에코뮤지엄을 통한 문화유산 활용사례 : 프랑스를 중심으로

제1호 《아트홀릭》수록. 2010년 11월 발행

박정연 1

1. 머리말
2. 에코뮤지엄의 개념 및 형성배경
3. 프랑스 주요 에코뮤지엄의 지역 문화유산 활용 사례
1) 지방 소도시형 에코뮤지엄
2) 소외된 사회와의 통합
3) 지역 문화유자의 재해석
4) 지역의 문화유산과 생태적 환경의 총체적 보존
4. 프랑스 에코뮤지엄의 특징 및 의미 분석
1) 지역적 연계를 통한 지역 활성화
2) 지역 문화유산의 총체적 보존 및 재해석
3) 체험 프로그램을 통한 교육 기능의 활성화
5. 맺음말

1. 머리말

 

  시대가 변함에 따라 뮤지엄이 수집하는 유물의 범위도 다양해졌으며, 사회에서의 역할과 형태 등에 있어서도 그 다양성은 확장되어왔다. 특히 유럽에서는 19세기 이후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근대산업문화유산의 보존과 지역 내 자연문화유산의 가치를 인식하였고, 이를 보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에코뮤지엄은 그 개념 및 형태에 있어서 지역 내 문화유산을 보존하기에 매우 적합한 형태의 뮤지엄으로, 뉴 뮤지올로지 2의 확산과 함께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이는 총체적인 문화적 맥락 안에서 경험을 통해 유물을 이해하고자하는 것으로 에코뮤지엄 내의 문화유산을 보존ㆍ전시하기 위해서는 사회ㆍ문화ㆍ경제ㆍ역사 전반에 이르는 학제간 연구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뮤지엄은 하나 혹은 그 이상의 건물에 유물을 보존하는 형태로 유지되어 왔으나 에코뮤지엄은 지역 전체와 지역의 문화유산을 비롯한 유무형의 문화전체를 다루고 있다. 에코뮤지엄은 지역의 환경 전체를 뮤지엄으로 대체한 것으로써 전통적인 뮤지엄이 관람객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에코뮤지엄은 지역 주민의 역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새로운 개념의 뮤지엄이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후반의 프랑스는 도시화로 인한 도시 인구 집중 및 사회의 정신적 황폐 등으로 인해 지역의 정체성의 확립 및 지역 환경에 대한 보존의 필요성에 대해 절감하였다. 산업화를 겪으면서 지역 주민 대부분이 지역의 산업에 종사하는 지역 경제가 산업 의존형 경제로 변모하였기 때문에 산업이 쇠퇴하면서 지역공동체가 해체될 위기에 처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지역 주민들의 주체의식과 지역을 개발하는 정책이 필요하였다.

  전통적인 뮤지엄들은 이런 요구에 잘 대응하지 못했고, 또 좋은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당시 뮤지엄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가장 근접한 정의는 지역공동체에 기여하는 뮤지엄이었으며, 지역에 밀접하게 연관되면서 지역의 경제를 부흥할 수 있는 대안으로써 에코뮤지엄의 설립이 논의되었다.
에코뮤지엄은 지역공동체의 맥락에서 본래의 자리에 위치한 건물들을 보존하며, 공중에게 개방하는 동안 그 건물을 계속 사용한다. 따라서 그곳에 거주하는 지역 주민들이 관광수입을 창출할 수 있다. 아래에서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에코뮤지엄의 지역 문화유산 활용 사례를 살펴보고, 그 특징 및 의의를 도출해 보고자 한다.

 

2. 에코뮤지엄의 개념 및 형성배경

 

  에코뮤지엄은 오픈 에어 뮤지엄(Open-Air Museum)이 설립된 이후 의미가 덧붙여져 프랑스에서 시작된 것으로, 1971년 국제박물관협의회(ICOM)의 회장이었던 위그 드 바랭(Hugues De Varine)과 프랑스의 조르주 앙리 리비에르(Georges Henri Rivière)에 의해 창안되었다. 리비에르는 에코뮤지엄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여 1980년 1월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총회에서 ‘에코뮤지엄의 발전적 정의(Evolutionary definition of Ecomuseums)’를 발표하였다. 그 정의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자연과 주민 그리고 역사이다. 3

  에코뮤지엄에 대한 아이디어는 스웨덴의 스칸센(Skansen)에서 시작한 생활사복원운동(Living history movement)의 전시기법과 생활 전체를 포괄적으로 표현하는 ‘집의 박물관’에서 기인했다. 4 특히 유럽지역에서는 1970년대 이후의 산업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쇠퇴한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는 대안으로써 많은 에코뮤지엄이 설립되어왔다.

  국제박물관협의회(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s/ICOM)의 규정에 의하면 박물관은 사회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공중에게 개방되는 비영리의 항구적인 목적의 기관으로써 학습과 교육, 위락을 위하여 인간과 인간의 환경에 대한 유형ㆍ무형의 증거를 수집, 보존, 연구, 교류, 전시하는 곳 5이라고 명시되어있다.

  에코뮤지엄(Ecomuseum)은 국제박물관협의회가 정의하는 박물관의 의미에 환경과 환경에 대한 역할을 담당하는 확장된 박물관이라는 의미를 덧붙인 것으로 지역 주민이 박물관 경영활동의 주체로써 참여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종전의 박물관은 하나 혹은 그 이상의 건물에 유물을 보존하는 형태로 유지되어 왔으나 에코뮤지엄은 지역 전체와 지역의 문화유산을 비롯한 유ㆍ무형의 문화전체를 다루고 있다. 또한 박물관 운영의 주체가 전문가와 단체 중심에서 지역주민 중심으로 이동한 형태를 띈다.

  유럽의 박물관들은 산업화 이후 시대적 변화에 따른 문화유산의 중요성과 보존가치를 인식하고, 새로운 형태의 뮤지엄을 설립하기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 이들 뮤지엄은 지역의 문화유산을 심도 있게 보존하고 연구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생태학(Ecology)에 관한 관심은 전통적인 근대적 뮤지엄의 형태를 탈피한 새로운 형태의 뮤지엄인 에코뮤지엄(Ecomuseum)을 설립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지역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에코뮤지엄은 지역의 문화유산을 보존하고자하는 사회적 요구에 적합한 형태의 뮤지엄으로, 뮤지엄의 설립과 운영은 세계적으로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에코뮤지엄이라는 개념은 1971년 리비에르에 의해 정의된 것이지만, 프랑스 내에서는 개념이 생성되기 위한 사회적인 선행조건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1960년대-1970년대의 프랑스는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동시에 농촌사회가 쇠퇴하는 시기였다. 이로 인해 1968년 5월에는 프랑스에서 학생과 근로자들이 연합하여 벌인 대규모의 사회변혁운동인 ‘5월 혁명(Revolution de Mai)’ 6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는 파리대학교(Université de Paris)의 학생 및 청년근로자들이 드골정부에 항의하여 벌인 사회변혁운동으로 사회와 교육의 모순과 관리사회에서의 인간 소외에 항의하기 위해 발생한 것이다. 이는 그 시대 프랑스가 인간 소외와 도시 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음을 잘 말해준다.

  비록 1960년대 후반 프랑스는 사회적인 혼란 속에서 국가의 한 부분인 지방의 쇠퇴를 방치한 채 급격한 전후 도시화를 겪게 된다. 또한 1960년대 중반 프랑스 사회 안에서 일어났던 사회적 논쟁과 불만들은 강한 혼란을 야기하였다. 동시에 환경적으로는 여러 생태학적인 재난이 발생하였고, 핵실험ㆍ전쟁ㆍ산업화 등으로 인한 환경오염 등으로 자연문화유산에 대한 중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는 생태주의(ecologism) 혹은 환경보존주의(environmentalism)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내었다.

  국제박물관협의회의 의장으로써 후에 에코뮤지엄 개념의 설립에 일조를 하게 되는 얀 엘리네크(Jan Jelinek, 1926-)는 체코의 브르노 대학교(Brno University)에서 인류학을 전공한 인류학자로써 에코뮤지엄의 이론적 기반을 다져왔다.

  1971년 리비에르와 위그 드 바랭에 의해 만들어진 에코뮤지엄이라는 개념은 그 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개념의 고안자이며 설립 추진자인 리비에르는 1965년까지 국제박물관협의회의 초대 디렉터였고, 이어 위그 드 바랭이 1965년-1974년의 기간 동안 ICOM의 디렉터로 역임하였다. 당시 국제박물관협의회의 회장을 역임한 위그 드 바랭은 1971년 9월 국제박물관협의회의 제 9회 회의 주제로 ‘뮤지엄과 환경’을 채택하였고, 그 결과 9월 3일 디종에서 열린 국제박물관협의회 총회 석상에서 환경장관인 로베르 푸자드(Robert Poujade)에 의해 약 500명의 박물관학자들 앞에서 이 용어가 처음 공표되었다.

  1990년대 초 프랑스박물관국(Direction des musées de France/DMF)은 사회적인 역사와 공동체 생활(역사박물관, 인류학, 민족지학박물관, 해양박물관, 민속생활사 박물관, 에코뮤지엄)의 양상을 다루는 뮤지엄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이는 ‘사회적 박물관(musée de société)’이라는 명칭으로써 따로 분류되었다.

  박물관 시험관(Inspection Générale des Musées/IGM)의 디렉터인 제르맹 비아트(Germain Viatte)가 그러한 종류의 박물관들을 ‘미래의 박물관(Museums of the future)’라고 정의하기도 하였듯이, 박물관의 새로운 정의는 많은 부분에서 미술관(Art museums) 등의 뮤지엄과 구분 지을 수 있게 하였다. 7

 

3. 프랑스 주요 에코뮤지엄의 지역 문화유산 활용 사례

 

1) 지방 소도시형 에코뮤지엄

 

  에코뮤지엄의 주요 요소 중 하나는 지역 주민이 운영 주체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어질 수 있다. 우선 지역 주민이 설립 및 운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이며, 다음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에 지역 주민이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도시커뮤니티 결성을 통하여 지역 주민이 자발적으로 설립에 참여한 것은 전자의 경우로, 대표적 에코뮤지엄으로는 크뢰조-몽소 에코뮤지엄을 들 수 있다. 크뢰조-몽소 에코뮤지엄은 크뢰조-몽소 에코뮤지엄의 석탄박물관 내부 랑데 드 가스코뉴 뮤지엄(Les Landes de Gascogne Museum) 8과 더불어 프랑스 최초의 에코뮤지엄 중 하나로 1973년 설립되었다. 지역의 일체감과 더불어 18세기 말 이후 지역의 주요 산업인 금속업ㆍ탄광업ㆍ유리제조업ㆍ세라믹 등 산업 활동에 관련된 문화유산의 연구 및 가치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9

  부르고뉴(Bourgogne)지방의 크뢰조(Le Creusot)와 몽소 레 민(Montceau-les-Mines) 두 마을을 중심으로 약 500㎢의 면적에 25개의 마을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면적은 서울의 면적(약 605㎢)에 근접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크뢰조-몽소 에코뮤지엄의 석탄박물관 내부

크뢰조-몽소 에코뮤지엄의 석탄박물관 내부

 

  크뢰조-몽소 에코뮤지엄은 자발적으로 조직한 도시 커뮤니티에 의해서 에코뮤지엄이 설립되었는데, 크뢰조-몽소 도시 커뮤니티는 크뢰조와 몽소 레 민 두 지역을 중심으로 16개의 코뮌(Commune) 10이 지방자치단체를 조직한 것이다. 1960년대 이후 산업이 급격히 쇠락하게 되면서 지역 활성화를 목적으로 자발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1970년 1월 13일 지방자치체가 모여 크뢰조-몽소 커뮤니티를 설립하였으며, 커뮤니티에 포함되는 지역 주민은 약 600여만 명이다. 이는 당시 프랑스 인구의 1/10에 해당한다.

  현재 프랑스에는 이러한 커뮤니티가 14개 있으며, 최초의 도시 커뮤니티인 보르도(Bordeaux), 릴리(Lille), 리옹(Lyon), 스트라스부르그(Strasbourg) 등이 1901년 법령으로 지정된 것과는 다르게 크뢰조-몽소 도시 커뮤니티는 대표자를 선출하는 방식으로 지역 주민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생성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지자체들이 에코뮤지엄의 운영에 필요한 시설을 공급하거나 필요 자금을 투자하고 있으며, 시당국은 부분적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1980년대 이 지역에 산업 위기가 닥쳤을 때 이 도시 커뮤니티는 경제개발과 지역발전, 고등 교육 및 연구, 산업 유원지의 개발 등을 하기 시작했다. 2002년 1월 통과된 사업세는 도시 커뮤니티의 주요 예산에 도움을 주고 있다. 11

  프루미-트렐롱 에코뮤지엄(Ecomusée de la Région de Fourmies-Trélon)은 지역 정부에서 적극 지원하고, 지역 주민은 간접적으로 운영에 참여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프루미-트렐롱(Fourmies-Trélon)지역은 프랑스 북동부의 벨기에와의 국경 근처 에 위치하고 있다. 에코뮤지엄은 푸르미 마을과 그 북동쪽 약 7㎞에 있는 트렐롱을 중심으로 한 푸르미-트렐롱 지역을 중심으로 한다. 그 지역은 약 20여개의 코뮌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인구는 약 4만여 명으로 남북으로 30㎞, 동서로 약 20㎞에 걸쳐 있다.

  설립을 위한 지역 협회가 1978년 형성되었고, 에코뮤지엄은 1980년 6월에 처음 개관하였다.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뮤지엄이지만 프랑스 박물관국의 통제를 받고 있으며, 문화부와 지역, 해당 코뮌 내의 다양한 부서로부터 재정적, 행정적 지원을 받고 있다.

  프루미-트렐롱 에코뮤지엄은 1990년에는 유럽 뮤지엄 대상(The European Museum of the Year Award/EMYA) 12을 수상하기도 하였는데, 상을 수여받을 당시 프랑스의 뮤지엄으로는 세 번째로 수상하였고, 에코뮤지엄으로는 처음 대상을 수상하였다. 뮤지엄으로서 완성도 및 정비도는 매우 높으며 이는 위베르(Hubert)가 말하는 두 가지 에코뮤지엄의 분류 중 ‘시설형 에코뮤지엄(Institutional ecomuseum)’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13 이러한 기관과 유럽으로부터 전체 800만 프랑의 전체 운영 기금 중 70퍼센트를 지원받았으며, 25명의 정직원과 11명의 주정부로부터 85퍼센트의 지원을 받는 5년 계약직 직원으로 구성되어있다. 또한 150여명의 협회의 회원이 자원봉사자의 역할로 행정적인 업무ㆍ연구ㆍ보존 업무ㆍ관람객의 가이드 투어 등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 소수자 사회와의 연계

 

  프렌느 에코뮤지엄(Écomusée de Fresnes)은 파리의 남쪽지방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럽과 비 유럽권 국가들이 투쟁해온 지역으로 민족 간의 긴장이 있어왔던 곳이다. 오래된 농장인 코틴빌 농장(La Ferme de Cottinville)을 근거지로 하여 설립되었으며, 1981년 공중에게 개방하였다. 프랑스의 변두리 지역인 프렌느(Fresnes)는 몇 개의 코뮌이 모여 구성된 에코뮤지엄으로 이는 정치적인 노력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지역이 오랫동안 인종 및 민족 간의 문제점들이 발생되어 왔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뮤지엄 및 뮤지엄의 전시는 인종차별주의와 배타주의를 비난하는 수단으로써, 소수자들에게 그들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작은 기회들을 부여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과거 뿐 아니라 현대사회의 문제를 문화유산의 개념으로써 접근하여 뮤지엄 속에 집중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다양한 뮤지엄의 이니시어티브(Initiative)를 발의하여, 그들이 경험하였던 역사적, 지질학적, 문화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프랑스박물관국의 제어를 받는 지방자치 뮤지엄으로, 프렌느의 코뮌 및 주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다. 매년 2만여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며, 이 중 80퍼센트는 지역 주민이다. 에코뮤지엄은 농업, 산업 및 프렌느의 사회사와 관련된 유물 및 문서를 수집하며, 건물들은 지역 역사로써 영구 전시된다. 교육활동은 ‘상상의 워크샵(Workshop of the Imagination)’에 중점을 두고 있다. 어린이들은 예술 혹은 사진과 관련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이는 경험을 통한 기술 습득으로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전시키는 프로그램이다. 한 예로 ‘말하는 이미지(Images parlées)’는 50명의 학생들을 초대하여, 그들 스스로 마을을 기록하기 위한 사진을 찍도록 하는 프로젝트이다.

  프렌느는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활동과 전시로 잘 알려져 있다. 28년 동안 뮤지엄은 점차 지역공동체의 과거를 재조명하는 것에서 동시대 사회와 현대 사회적 이슈를 강조하는 것으로 변모해갔다. 큐레이터인 프랑소아즈 와세르망(Françoise Wasserman)은 조르주 앙리 리비에르의 제자로써 그로부터 직접 에코뮤지엄의 개념을 배웠으며, 이는 프랑스에서 뉴 뮤지올로지로써 밀접하게 연관되었다.

  프랑소와즈 와세르망은 사회적 역할에 대한 지원을 통해 민족차별주의적인 매커니즘과 사회적 소외, 가려져있는 다민족 공동체를 장소에 접목시켜 문화적 정체성을 촉진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것이 뮤지엄이 지역공동체에 권한 가질 수 있다는 그녀의 믿음이었다. 14 노르웨이의 스타방에르(Stavanger)에서 열린 1995년 국제박물관협의회의 정기회의에서 와세르망(Wasserman)은 뮤지엄에 의한 지역공동체를 위한 탄원을 만들었고, 다른 문화에 대한 독특성과 유사점 모두를 인식해야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하였다.

  과학연구에 종사하는 직원들은 심포지엄ㆍ세미나ㆍ기타 활동 등에 참여하고 회의를 주최한다. ‘역사와 증언(History and Testimony)’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된 서적은 1985년부터 1998년까지 특별 전시들에 관련된 문서들을 모은 것이다.

  그 동안의 전시는 크게 여성의 생활ㆍ프렌느 감옥ㆍ사회적 소수자들에 관한 전시로 나눌 수 있다. 우선 1986년도에 열린 전시인 ‘빨래, 세탁부, 다림질하는 여자(Laundress, washerwoman, ironing-woman)’는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에 관한 전시로 그간 전통적인 박물관학적 논의에서 제외되어온 여성들의 생활과 그 역사에 관한 것이었다. 이는 직업에 대한 연구나 전통적인 기술 지식에 대한 연구를 위해 필요한 부분이었다. 민족역사학적 조사는 전시와 출반에 있어서 흔히 ‘여성 직업(Female occupation)’이라 불리는 것에 전념해왔다. 수집된 유물과 가정용품의 사용과 같은 기술 지식에 대한 시연ㆍ과거와 현재의 복식 비교ㆍ사회적 관습에 대한 비교를 통해 당시 여성들의 고된 삶을 짐작해볼 수 있다.

  1990년부터 1991년까지 열린 ‘프렌느, 감옥(Fresnes, the prison)’은 프랑스의 가장 큰 감옥인 프렌느 감옥의 죄수들에 관한 것으로 프렌느 감옥은 4,500여명의 죄수들과 2,500여명의 직원들이 기거하고 있다. 총 7,000여명의 사람들이 ‘감옥 왕국(Prison realm)’에서 살거나 일을 하고 있으며, 주변의 마을 주민 수는 3만 여명이다. 교도관과 죄수를 포함하여 감옥은 마을과 파리 지역의 거주자들, 그리고 일반 공중에게 공개되어야한다고 느껴졌다. 사실 죄수자들과 경호인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그룹이다.

  에코뮤지엄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 ‘감옥 사회(Prison community)’에 의견을 물었다. 죄수들은 뮤지엄이 감금의 지옥인 그 곳에 대하여 말해주기를 원했고, 반면 경호인들은 그들 직업의 어려움과 생활이 드러나기를 원했다. 에코뮤지엄은 그들 스스로가 하지 못하는 일들을 했고, ‘프렌느 감옥의 집을 공개하다(Open House in Fresnes Prison)’라는 제목의 전시를 기획하였다. 전시는 모든 것을 보여주었고 가능한 한 지역공동체와 소통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교도소의 회랑과 독방은 지역 주민들이 바깥 쪽에서만 관람 할 수 있도록 개방되었다. 전시는 사회적 배척에 관한 무기가 되어주었다.

  사회적 소수자들의 전시인 ‘힙합 딕시트: 뮤지엄에서의 현대음악(Hip-Hop dixit: le mouv’au musèe)’는 정치적, 경제적 논쟁을 유발한 이민 현상으로부터 비롯된 사회적 현상을 조명한 것이다. 에코뮤지엄이 통합의 어려움과 이민해 온 노동자에게 집중된 인종차별, 이와 관련된 국가와 유럽의 정책과 그들 스스로가 망명 신청자들을 받아들였던 프랑스 역사에 대해 주목하게 하였다. 에코뮤지엄의 주된 기능이 전시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뮤지엄의 분류ㆍ전시학에 곧 반영되리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어떠한 노력을 시도하기 전에 전시는 자아표현에 대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수자들의 의식을 고양시키기에 적합했다. 지역의 젊은 랩퍼들과 그래피티 아티스트들과 더불어 이민자 2세대들에 대한 문화적 정책을 강화하였다. 전시의 첫 부분은 힙합의 비난과 해결을 위한 노력 등 사회적 문제를 인지하는 것이었다. 이는 민족차별주의와 젊은이의 문화에 대한 인식의 결여, 슬럼가를 고려하지 않은 대저택 등의 무차별한 도시계획ㆍ폭력ㆍ이민 2세 젊은이들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ㆍ방과 후 벗어나기 어려웠던 방황과 타락의 순환 등도 포함하고 있었다.

  두 번째 부분은 인종간의 항변과 사회적 소수자들의 다양한 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간디의 평화주의, 1960년대에 금지되었던 북미 흑인들의 입국 등이 그것이다. 세 번째는 사진ㆍ회화ㆍ비디오 등을 통해 평화적인 슬로건을 보여주고, 개발의 형태ㆍ주요 특징ㆍ랩ㆍ댄스와 다양한 양식의 그래피티를 보여주는 것이다.

  에코뮤지엄의 같은 구역에 있는 프렌느 감옥은 1990년에서 1991년까지 죄수들의 이야기와 감옥 사회의 이중성, 즉 신비함과 두려움에 대한 전시를 하였다. 힙합(Hip-hop)을 토대로 한 활동들은 에코뮤지엄으로 하여금 전통적인 뮤지엄들이 무시하였던 지역공동체의 한 부분을 접할 수 있게 하였다. 젊은이들은 브레이크, 히피 등의 춤과 랩과 같은 음악, 그래피티 같은 그림 등의 예술로써 자신들을 표현한다. 이는 사회ㆍ문화ㆍ학술 등의 배제에 대한 반응이며 에코뮤지엄은 그들의 창조성을 폭넓은 관람객에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1991년 청소년들이 힙합의 역사에 대해 연구하는 프로젝트는 그와 관련된 문서를 찾고, 뮤지엄안에서 워크샵을 주최하며 마지막으로 전시를 여는 것으로 끝난다. 에코뮤지엄은 또한 이민자 공동체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였는데, 프렌느 지역에는 10%의 이민자 공동체가 거주하고 있었다. 에코뮤지엄은 ‘라루테스(La Lutèce)’라고 알려져 있는 이민자들이 많이 모여 있는 마을을 중심으로 그들의 생활을 이해하고 관련 문서들을 수집하기 위하여 민족학적인 연구를 하였다.

  사진ㆍ문서ㆍ기록문서 등 수집된 자료들로 1993년 이민자 공동체의 삶의 모습에 대한 전시인 ‘수집: 프랑스 이민의 세기(Rassemblance: Un Siècle d’ Imaaigration en Île-de-France)’를 전시하였다. 관람객들은 이민에 대한 표상을 알 수 있었고, 이민자 공동체들은 그들의 과거와 그들이 새로운 정착지에 극복하기위해 겪어야했던 어려움들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15

  노르웨이의 스타방에르(Stavanger)에서 열린 1995년 ICOM 정기회의에서 와세르망(Wasserman)은 뮤지엄에 의한 지역공동체를 위한 탄원을 만들었고, 다른 문화에 대한 독특성과 유사점 모두를 인식해야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하였다.

  소수 공동체ㆍ민족 공동체ㆍ어린이ㆍ청소년과의 대화를 창출함으로써 뮤지엄으로 하여금 마을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되며, 가까운 지역의 관련 주민에게 반응할 수 있다. 동시대 문화에 대해 듣게 되는 것으로 뮤지엄은 환영받는 장소가 될 것이며, 공중에게 열려있는 활발한 장소가 될 것이다.

  과거에 대한 정형화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프렌느의 특별전은 정기적으로 열린다. 1986년 전시되었던 유물은 여성들이 주로 고용되었던 세탁산업에 관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고통의 도구이자 좋은 것이라는 상반된 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긴 노동을 해야 했고, 지방 특유의 사회적 문제로 인한 일부 주민의 알코올 중독과 무역 연합간의 투쟁이 있었다.

 

3) 지역 문화유산의 재해석

 

  크뢰조-몽소 에코뮤지엄은 5개의 부지(site)와 협력박물관인 ‘화석박물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크게 샤또 드 라 베레리, 브리 퀘레리, 석탄박물관, 운하박물관, 메종 드 에꼴로 나뉠 수 있으며 각 부지와 협력박물관이 보존하는 유물 및 주제는 다양하다.

  샤또 드 라 베레리(Château de la Verrerie)에서 운영하고 있는 ‘청소년 열차(Young visitors’ trail)’ 프로그램은 8세-12세의 어린이와 부모가 안내소에서 게임에 관련된 소책자를 받아, 성에 대해 더 잘 알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실수를 찾아라(find-the-mistake game)’라는 게임을 통해 성의 안과 밖을 잘 둘러보고, 이상한 점을 찾는 등의 게임이 있으며, 때로 그림을 그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질문하고 답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표 2> 크뢰조-몽소 에코뮤지엄의 부지별 보존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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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 박정연. 2010. 6.

  브리퀘데리(La Briqueterie)에서는 공장 및 유적지에서는 19세기 말과 20세기의 세라믹에 관련된 산업과 생산지역을 둘러볼 수 있다. 씨리 르 노블(Ciry-le-Noble)에 위치한 베어리-보도(Vairey-Baudot) 세라믹 공장의 주요 생산물인 ‘아이언 블랙브릭(iron black brick)’의 생산과정을 볼 수 있으며, 보방스 강(La Bourbince river) 지역에서는 원료 저장시설ㆍ대형 생산물의 운반ㆍ에너지 사용 방법ㆍ운송 수단ㆍ용광로 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운하박물관(musée du canal)은 18세기 말에 만들어진 상트르 운하(Centre Canal) 16를 보전하고, 그와 관련된 전시를 개최하는 박물관이다. 이 운하는 지역의 동쪽으로 흐르는 손 강과 서쪽으로 흐르는 루아르 강을 잇기 위한 운하이며, 현재 수운을 위한 운하기능을 하지 않는다.

  크뢰조의 예술가인 크리스티앙 세고드(Christian Seguad, 1950- )가 크뢰조를 여행하면서 그린 회화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브로고뉴 뮤제의 지역적 취득(Régional d’Acquisition des Musées de Bourgogne)’의 자금 지원을 받아 1973년 소장하게 되었으며, 1990년 산업박물관(Musée de l’homme et de l’industrie)에서 첫 전시를 열었다. 500여점의 작은 사이즈의 상점ㆍ카페ㆍ굴뚝ㆍ풍경 등의 드로잉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밖에도 산업 풍경, 노동자와 제철소 주인의 초상화 등에 관한 회화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회화작품들은 산업 개발에 관한 것이며, 이 중 일부는 당시 사업의 촉진을 위해 주문된 것이다. 도자기 수집품들은 수문이 설립되면서 만들어진 지붕 타일ㆍ벽돌ㆍ건축물 외관의 색채장식ㆍ조각상ㆍ석기ㆍ도자기 뿐 만 아니라 기구ㆍ작은 기계ㆍ나무ㆍ벽토ㆍ철기 주물 등으로 이루어져있다. 이와 관련된 기록문서는 1863년부터 1967년까지의 카탈로그ㆍ재료 표본ㆍ모형ㆍ도면ㆍ엔지니어링 드로잉ㆍ사진 등이 있다.

  프루미-트렐롱 에코뮤지엄은 1780년의 사르스-포테리스(Sars-Poteries)의 제분소, 페레리스(Felleries)의 제분소, 그리고 뮤지엄은 지역에 특화된 관람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왈러스-트렐롱(Wallers-Trelon)의 파뉴 하우스(Fagne house)는 지역의 푸른 돌로 지어졌으며, 지질학과 자연사와 관련된 전시관이다. 푸르미의 섬유 공장이 있던 곳은 현재 ‘섬유와 사회사 박물관(the Museum of Textiles and Social History)’으로 운영되고 있다. 주변 거리를 재개발하여 1890년대의 교실과 상점들을 재현해두고 있다. 에코뮤지엄 내에는 주요 사이트로는 에코뮤지엄의 본부이자 가장 중심적인 시설인 직물과 사회생활 박물관(Le Museé du Textile et de la Vie Sociale)과 유리공방 박물관(Atelier Museé du Verre), 보카쥬의 집(La Maison du Bocage)등이 있다.

  프루미와 트렐롱 지역을 이해하기 위한 해설의 오솔길(Sentiers d’interpréation)은 자연과 건축물 오솔길(nature et architecture) 계절의 리듬 오솔길(Au rythme des saisons) 유리와 자연 오솔길(Vetre et nature) 수도원(autour de l’abbaye) 석탄암의 대지(une flore d’exeption sur la pelouse calcaire) 등 5개소가 있다.

  에코뮤지엄과 협력하는 민간박물관은 부아졸리의 수차(Moulin des Boisjolis) 수차박물관(Moulin à eau) 세관(Halte à la Douane) 대수도원의 부지(Site Abbatial) 삼림과 전원 생활 박물관(Le Museé de la vie Rurale er Forestiére) 등이 있다.

  알자스 에코뮤지엄(Écomusée d’Alsace)은 프랑스의 웅거샤임(Ungersheim)에 위치하고 있으며, 1984년 ‘과거, 현재: 삶(le passé, le présent: la vie)’이라는 슬로건으로 공중에게 개방하였다. 이는 1971년 알자스 농가 협회(Association Maisons Paysannes d’Alsace)가 형성되면서 설립된 것으로 지역의 건물을 보존하고, 관람객으로 하여금 과거의 문화유산을 현장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크뢰조-몽소 에코뮤지엄의 라 민 에 레 옴므 협회(La Mine et les Hommes Association)는 1970년대 에코뮤지엄의 연구기관으로 고고학 산업의 보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사라지기 시작한 석탄유적지에 대해 보존할 필요성을 느끼고 1882년 문을 닫은 생 클로드 광산의 입구(Saint-Claud mining shaft)에 관련 유적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1974년 라 민 에 레 옴므 협회는 브랑지 시와 에코뮤지엄과의 파트너십을 결성하였으며, 가능한 많은 유물을 보존하고자 하는 목표를 지니고 있다.

  정보 자원 센터에서는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개방하며 이곳에서 서적ㆍ정기간행물ㆍ학술지ㆍ연구보고서ㆍ사진ㆍ신문 등을 크뢰조와 몽소레민 지역의 역사에 관련된 제반 자료를 볼 수 있다. 또한 크뢰조와 몽소레민 지역의 현재에 관련된 정보와 사회적이고 산업인 역사에 대한 정보도 접할 수 있다. 프랑스 기관사 연맹(French Society of Civil Engineer)에서는 20% 정도의 논문, 도면, 기사 등이 영어로 구성되어 있으며, 반 이상의 정기간행물이 영어나 독일어ㆍ이탈리아어ㆍ스페인어ㆍ포르투갈어ㆍ러시아어 등의 외국어로 되어있다. 이러한 자료 등은 종종 기부 및 교환 등을 통해서 취득하고 있다.

 

4) 지역의 문화유산과 생태적 환경의 총체적 보존

 

  크뢰조-몽소 에코뮤지엄은 ‘샤또 드 라 베레리 에코뮤지엄’ ‘브리퀘데리 에코뮤지엄’ ‘학교의 집 박물관’ ‘탄광박물관’ ‘메종 드 에꼴’ 등 5개의 부지(site)와 협력박물관인 ‘화석박물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뮤지엄이 해당하는 지역과 지역 주민이 이를 방문하는 지역 주민이 다르기 때문에 운영 시간과 관람료도 다르다. 크뢰조 마을에 위치한 샤또 드 라 베레리(Château de la Verrerie)는 19세기 초의 크리스털 소장품들과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제철ㆍ철강회사를 설립했던 슈나이더(Schneider) 가문의 유물과 그들의 거주지를 관람할 수 있다.

  옛 공장의 역사에 관련된 전시물들은 성 안에 전시 되어 있으며, 19세기 초의 크리스털 공예품 등을 소장하고 있다. 산업화 시기에 제철소의 명문이었던 슈나이더 가의 소장품 및 그들이 거주하고 있던 가옥을 보존하고 있다. 전시장인 ‘살롱 데 두 아메리끄(Salon des deux Amériques)’에는 파노라마 벽지를 붙여 이를 표현하였고, 슈나이더 부인이 소장했던 가구 등의 소장품을 전시해 두었다. 크뢰조 마을의 탄생과 배경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거주지와 지역에 관한 조각ㆍ판화ㆍ회화와 모델 등을 전시한다.

  본옴므(Bonhommé) 라이로드(Layraud) 리젠스(Rixens) 로제뜨(Rochette)와 같은 크뢰조 지역 출신 화가의 19세기 말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으며, 모형 공장 및 기관차를 볼 수 있다. 모형 공장은 20여년에 걸쳐 제작한 것이며, 모형제작자인 에드먼드 베르나르드(Edmond Bernard)와 마르셀 타미(Marcel Talmy), 루시앙 모튜(Lucien Mothu) 등의 작업실의 재현공간을 관람할 수 있고, 모형 기관차 등을 볼 수 있다.
메종 드 에꼴(Maison d’école )은 몽소 레 민 지역에 있으며, 건물은 1880년에 세워졌다. 원래는 5개의 교실이 있는 학교로 사용되어졌으나 1988년 이 건물이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19세기 말부터 1950년까지 사용되었던 교실이 재현되어 있다. 탄광박물관(Musée de la mine)에서는 석탄 채광에 관련된 전시를 하고 있다. 석탄 채광 지역인 브랑지 몽소(Blanzy Montceau)는 16세기부터 운영되어왔다. 1810년부터 2000년까지 2억 톤 이상의 석탄이 채석되었으며, 2000년 운영이 중단되었다. 탄광박물관에는 서점과 비디오자료, 모형 등과 브랑지 석탄 지역에 관한 전시를 볼 수 있다.

샤또 드 라 베레리 에코뮤지엄의 전경

샤또 드 라 베레리 에코뮤지엄의 전경

 

  탄광박물관은 인공적으로 다시 재현한 것이 아니라, 원래 생-클라우드 광산의 입구(Saint-Claude winding shaft) 둑에 정착되어 있던 곳이다. 1750년경에 처음 발굴되었으나, 1833년 ‘블랑지 광업회사(Coal Mine Company of Blanzy)’가 쥴스 샤고트(Jules Chagot)에 의해 창설되면서, 채광이 산업적으로 변모하였다. 이후 지역 주민이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하였고, 1900년대에는 5만여 명이 거주하게 된다. 쥴스 샤고트(Jules Chagot)는 1877년에 사망하였고, 그의 조카가 그의 뒤를 이었다.

  그러나 1899년 가족 중심으로만 기업을 운영하는 것에 반발하여 광산 인부들이 파업에 돌입하였고, 쥴스 사고트의 조카인 고르나이(Mr. De Gournay)는 해임되었다. 회사는 이후 ‘블랑지 광산 회사(société anonyme des mines de Blanzy)’로 변경되었다. 1920년대와 1940년대 사이 산업이 가장 번영하였으며, 1만여 명의 광산 인부들이 일하고 1년에 약 220만 톤의 석탄을 채굴하였다.

  1946년 광산은 국유화되었으며, ‘프랑스 석탄 이사회(French Coal Board)’에 의해 관리되었다. 1960년대부터 광업의 전반적인 쇠퇴가 시작되었고, 블랑지 지역은 1992년 4월 30일 다시 광산의 입구(Darcy Winding Shaft)를 폐쇄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광업을 중단하게 되었다. ‘탄광과 인부들(The Mine and the Men)’이라는 명칭의 협회는 뮤지엄과 뮤지엄 내의 유물들을 돌보기 위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졌으며, 현재에도 운영되고 있다.

  석탄 채광 지역인 블랑지 몽소(Blanzy Montceau)는 16세기부터 운영되어온 곳으로, 1810년부터 2000년까지 2억 톤 이상의 석탄이 채석되었으며, 마지막 광산은 1992년에 문을 닫았고, 2000년에는 석탄 운영이 중단되었다. 블랑지에는 서점과 광부들이 사용하던 등잔을 재현한 상품을 판매하는 뮤지엄 숍이 있다. 맨 위층에는 블랑지 석탄 지역의 생활에 관한 상설전이 전시되고 있으며, 1920년대 광부들이 살던 집의 구조 등을 관람함으로써 당시 광부들의 삶과 작업 환경을 경험해 볼 수 있다.

  프레롱 헤드 프레임(The Prélong head frame)은 브랑지 시의 후원을 통해 재건축된 것으로, 다타 르 광업회사(Data le mine company)가 장비, 부지, 서비스 등을 후원하였다. 후원을 토대로 한 설계를 거쳐 1978년부터 공중에게 개방되었다.

다비아우드, 방뎅 습지 에코뮤지엄의 전경

다비아우드, 방뎅 습지 에코뮤지엄의 전경

 

알자스 에코뮤지엄에서는 생태학적 환경과 연계된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는데, 자연 속에서 ‘국제 주택 페스티벌(Festival international de la maison)’이 개최되고, 많은 두루미가 뮤지엄 전역에 둥지를 틀고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어 생태 뮤지엄다운 면모를 구축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뮤지엄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숙소도 마련되어있다. 10개의 가옥이 있는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으며, 알자스지방의 전통건축물로 이루어져 있다. 숙소는 정원과 독립적인 입구를 가진 호텔이나 침실과 부엌, 거실이 있는 아파트, 여러 개의 방이 있는 아파트 등으로 나눠져 있다. 또한 음식점에서는 알자스 지방의 전통 음식을 맛 볼 수 있고 장인들이 직접 제작한 물건들도 구입할 수도 있다.

  다비아우드, 방뎅 습지 에코뮤지엄(Le Daviaud, Ecomuseum of the Vendéen marshland)은 프랑스 정부의 지역 활성화 계획의 일환으로 퓌 두 푸(Puy du Fou)를 중심으로 설립되어있다. 퓌 두 푸 성은 르네상스 시대의 작은 성으로 성 주변에는 30헥타르 면적의 습지로 구성되어있는 그랑드 파카워(Grand Parcours)가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생태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다비아우드, 방뎅 습지 에코뮤지엄은 대륙과 바다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19세기와 21세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습지로 이루어진 자연유산 및 문화유산이 보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 북서부지역의 문화적 지역으로써의 역할을 하고 있다. 에코뮤지엄은 환경에 관련된 기관, 협회 및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접점으로, 관람객에게는 지역 사회의 발전사를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에코뮤지엄은 방뎅 습지 지역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60만㎡에 이르는 공간에 생태학적이고 인류학적인 유산들을 포함하고 있다. 지역의 동ㆍ식물군을 체험해볼 수 있는 생태학적 공간을 산책할 수 있는 산책로가 마련되어있고, 소요시간은 2시간이다. 말이 끄는 마차를 이용하여 주변 지역을 관람할 수 있으며, 웨딩홀인 다비아우드 홀(Daviaud hall)을 운영하고 있어, 자연 속에서 결혼식을 올릴 수 있게끔 하고 있다. 퓌 두 푸 성은 방뎅 에코뮤지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으며, 1977년 당시 24세였던 정치인 필립 드 빌리에(Phillippe de Villiers)가 퓌 두 푸 협회(l’Association du Puy du Fou)를 조직함으로써 설립하였다. 프랑스 서부에 위치한 방뎅 습지 지역의 중심지이기도 한 레 에페세(Les Epesse)에 위치하고 있으며, 1년에 약 120만여 명의 관람객이 관람하는 지역이다.

  퓌 뒤 푸 성은 방뎅 지자체(Dèpartment de la Vendéé)가 1977년에 부지 및 성을 구입하면서 프랑스 정부와 루아르 지방정부(Région des Pays de Loire)의 재정지원을 받으면서 지역 활성화 계획의 일환으로써 개발을 진행하면서 설립한 것이다.

  다비아우드, 방뎅 습지 에코뮤지엄은 크게 보린느 카르티에(Bourrine à Chartier)ㆍ그랑 데 릴로트(Grange de l’îlot)ㆍ펌므 뒤 다비아우드(Ferme du Daviaud)ㆍ샬롱쥬(Salorge) 등 4곳의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보린느 카르티에(Bourrine à Chartier)는 방뎅 습지의 전통적인 서식지로, 17세기부터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던 지역이다. 에코뮤지엄이 보존하고 있는 가옥은 19세기의 전형적인 가옥으로 건물은 생활을 위한 공간과 가축을 위한 공간 등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랑 데 릴로트(Grange de l’îlot)는 방뎅 지역의 대표적인 습지 지역으로 샬레르탕(Sallertaine) 마을이 있는 곳이다. 18세기 이전에 지어진 건물들이 있으며, 당시 생활품과 전통 의상이 전시되어 있다. 아이들을 위해 그 곳에서 서식하는 뱀과 사다리를 이용한 체험학습이 운영되며, 구두 증언과 문서, 사진 등의 자료가 수집되어 있다. 다비아우드, 방뎅 습지 에코뮤지엄은 뮤지엄의 목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에코뮤지엄의 목표는 과학, 기술, 민족지학적 문화유산 뿐 아니라 지역의 자연적 문화적 문화유산을 발전시키고, 지역의 과거를 보존하는 것이다. 에코뮤지엄과 민속학 박물관들은 보존의 역할 뿐 아니라 지역의 서식지를 보존하고, 생활과 관련된 활동을 하며 그것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사회 안에서 참여와 시도가 논의되며, 정체성과 차이점, 현재에 관련된 문제들을 다루며 사회 안에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 17

  이는 에코뮤지엄이 과거를 보존하는 것 뿐 아니라 현재에 관련된 문제들을 뮤지엄 안에서 해석함으로써, 지역의 전반적인 문화를 뮤지엄 안에 포함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비아우드, 방뎅 습지 에코뮤지엄은 몽뜨 해양-습지 마을 공동체(Communauté de Communes Océan-Marais de Monts)에 의해 운영되며, 프랑스 박물관(Musée de France)으로 분류된다. 또한 방뎅 에코뮤지엄 네트워크 뿐 아니라 프랑스 에코뮤지엄 연합에도 소속되어 있다.

 

4. 프랑스 에코뮤지엄의 특징 및 의미 분석

 

1) 지역적 연계를 통한 지역 활성화

 

  크뢰조-몽소 에코뮤지엄이 보존하고 있는 지역인 크뢰조와 몽소 레 민 지역은 슈나이더가(the Schneiders)가 산업복합체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던 지역으로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슈나이더가가 파리로 이주하면서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지역 경제가 의존하던 산업이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이는 경영의 부재와 산업체의 황폐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주민 대부분이 지역의 산업에 종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15만여 명의 지역 주민이 직업을 잃게 되었고, 지역 공동체가 해체될 위기에 처했다. 쇠퇴하는 도시를 재활하기 위한 지역 개발 정책의 일환으로써 위그 드 바랭( Hugues de Varine), 조지 앙리 리비에르(Georges Henri Riviere) 그리고 마르셀 에브라드(Marcel Evrard)가 인간과 산업을 위한 뮤지엄으로써 에코뮤지엄을 제안하게 되었고, 이에 크뢰조-몽소 에코뮤지엄이 설립되게 되었다.

  크뢰조-몽소 에코뮤지엄이 보존하고 있는 지역은 프랑스에서도 비교적 빠른 시대에 번영했던 지역으로 1850년부터 양모 직물, 유리 산업이 발달했고, 통신 수단과 기술이 진보하면서 19세기에는 이들 산업이 크게 번성했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은 일률적인 형태의 직업에 종사하게 되었고, 지역 의존적인 산업 경제는 산업이 쇠퇴함에 따라 지역 전체가 쇠퇴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지역적으로 거의 전 주민이 지역 산업에 종사했지만, 사회와 경제의 위기에 직면하고 1974년 오일 쇼크 등을 거치면서 1970년대에는 거의 모든 산업이 쇠퇴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 지역은 다른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대기업에 의한 도시화 및 인구집중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역의 번영에 있어서 지역 자체를 일종의 작은 기업화함으로써 발전해왔다는 점에서 산업이 쇠퇴하기 시작하자 지역 전체가 쇠퇴할 수 밖에 없었으며 18 따라서 지역 전체로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시스템이 요구되었고 이에 에코뮤지엄이 제안되었던 것이다.

  프루미-트렐롱 에코뮤지엄도 크뢰조-몽소 에코뮤지엄과 비슷한 이유로 설립되었다. 일률적인 산업에 의존한 지역 경제 시스템으로 인하여, 산업이 쇠퇴하자 지역 전체가 쇠퇴할 수 밖에 없었고, 이에 1977년 마크 구자드(Marc Goujard) 19가 지역을 에코뮤지엄으로 정비하는 것을 제안하면서 프루미-트렐롱 에코뮤지엄을 만들기 위한 활동을 시작하였다. 활동의 단기 목표는 계속 파괴되고 있는 방적기계와 유산, 귀중한 장소를 기록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그것을 전시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지역에서 스코시오-문화 위원회(Scocio-cultural committee)의 회의가 열리면서, 지역의 직물 산업에 대한 심각한 위기의 영향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이는 지역 주민들의 생활에 주요한 영향을 주고 있는 산업문화유산의 보존 뿐 아니라 지역의 자부심ㆍ지역 정체성의 강화ㆍ미래에 대한 희망 등을 위한 것이었다. 보존ㆍ연구ㆍ지역적 접근에 대한 필요성과 이러한 목적과 관련된 에코뮤지엄의 모형에 적합한 사회적ㆍ경제적 목표들을 고무시킨다. 20

  프렌느 에코뮤지엄의 전시는 소수 공동체, 민족 공동체, 어린이, 청소년과의 대화를 창출함으로써 뮤지엄으로 하여금 마을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관람객 및 지역 주민들은 동시대의 문화와 지역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직접 접하게 되었다. 과거에 대한 정형화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프렌느 에코뮤지엄의 임시전시는 정기적으로 열린다. 1986년 전시되었던 유물은 여성들이 주로 고용되었던 세탁산업에 관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고통의 도구이자 좋은 것이라는 상반된 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긴 노동을 해야 했고, 지방특유의 알코올중독과 무역연합간의 투쟁이 있었다.

  에코뮤지엄은 코틴빌(Cottinville)의 영주의 집과 헛간, 농장들을 적절하게 개조하였다. 지역과 지방의 역사에 관련된 정보 자료 센터ㆍ회의실ㆍ교육 활동 센터ㆍ행정 사무실ㆍ리셉션ㆍ강당 등이 있다. 그 곳은 지역의 역사센터로 다양한 학제간 연구 프로그램이 운영되어왔다. 농장은 야외공연장으로 활용되어왔으며, 1,000㎢의 키친가든(Kitchen garden)에는 멸종위기의 식물들이 재배되고 있다.

  설립된 이래 에코뮤지엄은 프렌느 지역공동체가 도시개발과 관련하여 겪고 있는 현재와 미래의 문제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왔고, 영구 훈련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몇 일간의 실무 교육 혹은 일시적인 활동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전문가들이 공동으로 연구한 전시에 관련된 카탈로그와 서적을 출판하고 있다. 또한 전문가들과 함께 문화적 주제에 관련된 심포지엄을 조직하기도 한다.

 

2) 지역 문화유산의 총체적 보존 및 재해석

 

  크뢰조-몽소 에코뮤지엄의 도서관은 1,000여권의 정기간행물과 5만여 권의 서적, 사진, 도면 등으로 이루어져있다. 정기간행물은 200여년 간의 과학적 연구들이며, 도면과 기사들은 1850년부터 1978년까지 수집한 것이다. 1만 2천여 장의 흑백 혹은 컬러 사진과 4천여점의 디지털자료를 접할 수 있다. 별도의 교육부서가 있으며, 이는 모든 단계의 학교 단체를 위한 것이다. 지역 연계, 특히 학교와의 연계를 위해서 관련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국내 에코뮤지엄의 도입에 있어서 고려되어야 할 주요 사례이다. 이 부서는 산업 도시화의 다양한 양상을 소개하고 유적과 학교 커리큘럼과의 관계를 형성한다. 학교가 요구하는 교육 수준에 맞추어 안내하며, 협력하여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프루미-트렐롱 에코뮤지엄(Ecomusée de la Région de Fourmies-Trélon)은 프루미 지역에 에코뮤지엄 본부를 설치하고, 문서관련업무와 정보센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역의 코뮌은 에코뮤지엄에 포괄되어 있으며, 복구와 유지 등의 역할과 더불어 에코뮤지엄의 개체로써 다양한 프로그램에 대한 활동과 해석에 대한 책임을 지니고 있다. 네트워크로 구성된 부지는 연간 8만여 명의 관람객을 동원하고 있다. 지역에서 온 관람객은 약 60퍼센트이며, 나머지 25퍼센트는 프랑스인이고 15퍼센트는 외국인 관광객이다. 관람객 수치는 에코뮤지엄의 생존을 유지하는 주요 요소가 되며 재정적인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목표 관람객은 약 10만여 명이다. 21

  크리스털 수집품들은 크뢰조의 산업을 대표하는 것이다. 일부를 제외하고, 매우 정교한 것들로 이루어져있으며, 제국시대의 다양한 발전을 볼 수 있다. 1830년 이전의 문서들은 크뢰조가 생기기 전인 1786년 설립된 몽세니 크리스털 산업(Montcenis Cristal works)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또한 1878년 세계박람회를 통해 수집된 슈나이더 회사(Schneider Company)의 소장품들을 포함한 317장의 사진은 크뢰조의 산업 유적지와 주민ㆍ건축물ㆍ도시 풍경을 담고 있다.

  프루미-트렐롱 에코뮤지엄은 지역 내 9개의 유적지의 네트워크를 통해 섬유산업과 시골생활을 보여주고 있는 생 뒤 노르(Sains du Nord)는 19세기의 시골 풍경을 보여주며, 주변의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는 야생 생물과 건축물 등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트렐롱의 유리생산의 역사는 로마시대부터 이어져왔으며 초기 유리공장에 대해 묘사해준다. 1983년 개관한 뮤지엄에는 1850년부터 사용되어온 용광로가 있다.

  알자스 에코뮤지엄은 한 때 산업화의 중심지였으나 지금은 폐허로 남은 프랑스의 클레르 탄광(clair de mine)을 중심으로 한 알자스 지역 22에 설립되었다. 산업화시대의 광산과 농장을 두 종류로 나누어 체험 공간으로 만들었다. 농장체험은 수공예와 전통 축제, 밭과 공원, 오래된 살림도구 등 70개의 시골집을 옮겨서 구성한 뮤지엄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23

  알자스 에코뮤지엄은 역사적인 의미를 지녔음에도 재건축의 위협을 받고 있던 알자스 지역의 근대적인 건축 문화유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개념에서 시작되었다. 주로 야외 박물관 형식으로 되어있고,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초기 뮤지엄으로 역사적인 단계로서의 전통적인 건물을 보존하고 있다. 25헥타르의 대지 위에 70개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각 건물들은 전형적인 시대ㆍ지역ㆍ사회그룹ㆍ특정 산업들을 대표하고 있다. 가장 오래된 건물은 1492년 지어진 집으로 관람객은 15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건축된 빌딩들의 변천사를 관람할 수 있다. 24

 

3) 체험 프로그램을 통한 교육 기능의 활성화

 

알자스 에코뮤지엄에서 체험학습 중인 관람객들

알자스 에코뮤지엄에서 체험학습 중인 관람객들

 

  알자스 에코뮤지엄은 체험학습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역의 자연문화유산과 관련하여, 지역의 주요 산업인 농업과 관련된 체험학습이 가능하다. 체험학습은 직원이 직접 시연함으로써 이루어지는데, 과거의 방식으로 집을 짓거나 농사를 짓는 등의 모습을 연출한다. 또한 뮤지엄 내에는 마차가 운행되고 있어, 어린이들로 하여금 흥미를 유발한다.

  이 뮤지엄의 특색은 근대 산업화과정에서 독일지역에 속했던 마인지역의 광산을 통하여 노동현장을 현장감 있게 체험하면서도 바로 옆 농촌 체험장에서는 옛 농부와 농촌의 생활을 그대로 읽고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으로서 극과 극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지만 관람자들에게는 많은 교육적 효과를 도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25

  1978년과 1979년에 프루미-트렐롱 에코뮤지엄은 문화센터와 지역 전체의 초등학교와 교육 프로젝트 계약을 맺었다. 이 프로젝트는 ‘푸르미 지방 100년의 사회 경제생활’이라고 이름 붙이고, 우선 초등학생들에게 가정에서 할아버지들과 아버지들이 어떤 일을 하고, 가족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었는지를 조사하게 했다. 그 아이들의 증언이 많은 사진과 기록자료, 기자재 등의 수집으로 이어졌다. 개인적인 자료도 많이 있다. 게다가 각각의 초등학교에서 추억의 물건들을 진열하는 전시회를 열어서 서로 공개하게 되었다.

  한편으로 60세 이상인 사람들이 협회를 결성하여 그들이 살아온 역사에 관한 추억을 수집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고령자 그룹이 아이들이 모은 자료에 여러 지역 특유의 의미를 규정하고, 유산에 가치를 부여해 가는 작업을 했다. 그들 자신의 역사를 이야기해 주거나, 방언과 노래 등을 녹음함으로써 지역과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하였다. 푸루미-트렐롱의 학술적인 활동과 연구는 1982년 설립된 과학 위원회에 의해 이루어지며, 지질학ㆍ역사ㆍ민족지학ㆍ사회학ㆍ과학ㆍ기술학ㆍ박물관학의 전문가들을 초빙할 수 있다.

 

5. 맺음말

 

  1960년대 이후 수십 년에 걸쳐 급속도로 증가한 뮤지엄의 양적인 팽창 과정에서 그 질과 성격, 형태 등이 매우 다양화되었다. 그 이전의 뮤지엄들과는 달리 혁신적인 형태로 진화된 형식과 내용을 추구해왔다. 26 그 중 뮤지엄의 운영 주체로써 지역공동체와 지역 정부가 새롭게 대두되었으며, 이에 주민의 참여가 요구되면서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뮤지엄이 생성되기 시작하였다.

  전통적인 뮤지엄이 일정한 건물 안에 수집된 유물을 전시ㆍ보존하는 것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반면 에코뮤지엄은 일정한 공간 혹은 지역 내에 지역에 관련된 문화유산을 전시ㆍ보존한다. 이때의 문화유산은 유형유물 뿐 아니라 무형의 문화유산까지 모두 포함된 개념으로 관습 및 전통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는 전통적인 뮤지엄들이 유물을 전시하거나 보존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 에코뮤지엄은 지역공동체가 가지는 인식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에코뮤지엄은 지역의 환경 전체를 뮤지엄으로 대체한 것으로써 전통적인 뮤지엄이 관람객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에코뮤지엄은 지역 주민의 역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새로운 개념의 뮤지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뉴 뮤지엄(New Museum)으로 전통적인 뮤지엄과 구분되는 특징이다.

  지역 전체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에코뮤지엄은 생태적 환경을 포함한 지역 내의 건물들과 문화유산을 총체적으로 보존하고 있으며 운영 및 보존에 있어서 지역 정부 및 기관 뿐 아니라 지역 주민의 참여를 강조하고 있다.

  위그 드 바랭(Hugues de Varine, 1935-) 27은 이러한 형태의 뮤지엄이 필수적으로 지역공동체, 즉 주민으로 명명되는 문화적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특히 특정 구역이 발전하기 위한 자원으로서 일상적인 생활에 관련된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있으며, 이는 고전적인 뮤지엄과는 대조되는 특징으로, 고전적인 뮤지엄은 한 건물에서 공중을 위한 수집품으로 특징화되는 것인 반면, 에코뮤지엄은 한 장소에서 건물을 포함한 생활사 전반에 관련된 문화유산을 보존한다.

  지역에 관한 접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는 데 첫 번째는 지역 내의 문화유산을 발굴 및 보존함으로써 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지역 내 문화유산을 관광자원화 함으로써 지역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이는 경제적인 접근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지역 주민의 사기를 고양시킴으로써, 주민들을 문화적으로도 활성화 시키는 면이 있다.

  뮤지엄의 형태 및 역할이 확대됨으로써 지역에 관련된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하여, 민속학역사학ㆍ사회학ㆍ경제학에 이르는 학제간의 연구가 불가피 하였고, 이로 인해 문화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을 시도하게 되었다. 또한 지역 안의 사회적 문제 혹은 역사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였고, 뮤지엄 내에서 연구 기관을 설립하고, 지역 내 교육 기관과 연계하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체험 교육을 기반으로 한 교육적 연계의 시도는 지속적인 연구와 개발 없이는 일반화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즉 오락 기관과의 차별성을 두기위해서는, 단순히 체험적인 기능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역사적 인식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하는 연구가 수반되어야 한다고 보여 진다.

  최근 우리나라는 지역 간 경제 불균형 및 지역의 활성화 등 지역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의 하나로써 에코뮤지엄 혹은 오픈 에어 뮤지엄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뮤지엄의 정확한 개념 정리를 통한 이론적인 기반은 아직 부족한 실정이며, 그동안 시도되었던 뮤지엄의 설립 사례는 지역 개발 정책의 일환으로써 운영되어, 지역의 문화유산의 보존과 생태학적 측면의 환경적 인식은 부족한 면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사례를 통해 새롭게 변화하는 뮤지엄의 진화과정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참고문헌

 

· Peter Davis Ecomuseums: A Sense of Place. Leicester University Press. 1999. London.
· Davis, P, De Varine, H, Maggi, M, Su, D. and Zhang, J, ed. Communication and Exploration. Guiyang, China: Provincia Autonoma di Trento, 2006.
· Peter Davis. New Museologies and Ecomuseum. ed. Brian Graham, Peter Howant. The‘ Ashgate research companion to heritage and identity. Ashgate publishing limited. 2008. Hampshire.
· Hubert François. Ecomuseums in France: contradictions and distortion. Museum. No. 148. ICOM(UNESCO). 1985
· Georges Henri Rivière. The ecomuseum: an evolutive definition. Museum. No.148. ICOM(UNESCO). 1985
· 최병식〈오픈 에어 뮤지엄, 에코뮤지엄의 지역유산 활용과 지역사회 연계 사례〉p.214. 조형교육 제 34집. 한국조형교육학회. 2009
· Ecomusée creusot-montceau www.ecomusee-creusot-montceau.com
· Le Daviaud, Ecomusée de Vendéen marshland
www.ecomusee-ledaviaud.com
· Ecomusée d’Alsace www.ecomusee-alsace.fr
· Ecomusée de Fresnes www.ecomusee-valdebievre.fr
· Ecomusée de la Région de Fourmies-Trélon www.ecomusee-avesnois.fr
· UNESCO www.portal.unesco.org
· International Committee of Museums(ICOM) www.icom.museum
· Fédération des ecomusées et des musées de société http://fems.ass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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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1.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 미술평론·경영 전공 5기. 2010년 8월 졸업
  2. 뉴 뮤지올로지(New Museuology). 전통적인 박물관학이 전시된 유물을 통해 유물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뉴 뮤지올로지는 총체적인 문화적 맥락 안에서 경험을 통해 유물을 이해하고자하는 것으로 전통적인 박물관학에서 새롭게 확장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3. Georges Henri Rivière. The ecomuseum: an evolutive definition. p.4. Museum. No.148. UNESCO. 1985
  4. Hubert François, 〈Ecomuseums in France: contradictions and distortions〉pp.186-190 Museum, No. 148, ICOM(UNESCO)
  5.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법령 http://icom.museum/statutes.html#3
  6. 5월 혁명(Revolution de Mai). 칸대학과 파리대지 낭테르 분교의 학생 시위가 정부의 탄압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총 400만 명이 파업과 공장 점거, 대규모 시위에 참여하였는데, 이들은 정부가 대학교육의 모순과 관리사회에서의 인간 소외, EC(유럽공동체) 체제하에서의 사회적 모순을 해결해 줄 것을 주장하였다. 당시 드골 정부는 노사대표와 임금인상과 사회보장, 노조의 권리 향상을 보장하는 그루넬 협약을 맺는 등 사태를 수습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마침내 드골은 국민에게 신임을 묻기 위하여 의회를 해산하고 6월 23일부터 30일까지 총선거를 실시하였다. 이 선거에서 여당은 485의석 가운데 358석을 차지하여 대승리를 거두었으나, 5월혁명의 영향으로 체제가 흔들려 1969년 국민투표에서 패배하였다.
  7. Peter Davis Ecomuseums: A Sense of Place. p.87. Leicester University Press. 1999. London
  8. 랑데 드 가스코뉴 뮤지엄(Les Landes de Gascogne Museum). 1970년에 설립된 에코뮤지엄으로 프랑스 남서부 지역의 레이르 강(river Leyre)을 중심으로 한 41개의 지역 정부와 협력하고 있다. 31만 5,000헥타르의 부지와 6만 500여명의 지역 주민을 포함하고 있으며, 지역의 생태학적 환경과 관련된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있다. Les Landes de Gascogne Museum www.parc-landes-de-gascogne.fr
  9. Ecomusée Creusot-Montceau www.Ecomusée-creusot-montceau.com
  10. 코뮌(commune)은 프랑스 공화국의 가장 낮은 행정 구역이다. 이 용어는 12세기에 ‘공동 생활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의 작은 모임’을 뜻하는 중세 라틴어 ‘communia’에 처음 나타났다. 더 거슬러 올라가 라틴어 ‘communis’는 함께 모인다는 것을 뜻한다.
  11. Ecomusée Creusot-Montceau www.Ecomusée-creusot-montceau.com
  12. 유럽 뮤지엄 대상(The European Museum of the Year Award). 지난 2년간 비약적인 발전과 현대화된 뮤지엄 혹은 지난 2년 동안 설립된 뉴 뮤지엄에게 수여된다. 대상관은 매년 유럽의회의 유럽 뮤지엄 포럼(European Museum Forum)에서 발표되며, 박물관학자인 케네스 허드슨(Kenneth Hudson)이 설립하였다. http://www.europeanmuseumforum.eu
  13. Peter Davis Ecomuseums: A Sense of Place. p.109. Leicester University Press. 1999. London.
  14. Peter Davis Ecomuseums: A Sense of Place. pp.96-99. Leicester University Press. 1999. London
  15. Peter Davis Ecomuseums: A Sense of Place. pp.98. Leicester University Press. 1999. London
  16. 프랑스 중앙부에 있는 손 강(Saone River)과 루아르 강(Loire River)을 연결하는 운하로 길이 127km이다. 중손강의 하항(河港) 샬롱쉬르손에서 비롯하여 크뢰조의 탄전과 공업지역을 거쳐 디구앙에서 루아르 강의 지선(支線) 운하와 합쳐진다. 1784년-1790년 건설된 것으로, 도중에 68개의 수문이 있다.
  17. Le Daviaud, Ecomusée de Vendéen marshland. http://www.ecomusee-ledaviaud.com
  18. 크뢰조와 몽소 레 민 지역은 19세기에 산업이 전성기를 이루던 시기에는 30개 이상의 유리와 방적공장이 있었으나, 현재에는 단 한 곳도 남아있지 않다.
  19. 현재 프루미-트렐롱 에코뮤지엄의 디렉터. 1977년 당시 프루미 문화센터의 디렉터를 역임하고 있었다.
  20. Peter Davis Ecomuseums: A Sense of Place. p.109. Leicester University Press. 1999. London.
  21. Peter Davis Ecomuseums: A Sense of Place. p.109. Leicester University Press. 1999. London.
  22. 알자스(Alsace) 지역은 역사적으로 신성로마제국의 일부였으나, 점차 루이 13세와 루이 14세에 의해 프랑스에 합병되었고, 이후 프랑스 영토의 일부가 되었다. 알자스는 독일 영지의 일부였다는 이유로 로레인(Lorraine) 지역과 함께 자주 언급되고 있는데, 1871년에서 1918년 사이에 알자스와 로레인은 제국지방(imperial province)이었으며, 19세기와 20세기에 걸친 투쟁으로 알자스의 영토는 프랑스와 독일 사이를 75년간이나 오갔다. 비록 역사적으로 알자스가 독일 방언을 사용한 지역이었을지라도, 오늘날 대부분의 주민들은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39%의 지역 주민과 10% 미만의 어린이들은 아직도 방언을 사용하고 있다.
  23. Écomusée d’Alsace www.ecomusee-alsace.fr
  24. Peter Davis Ecomuseums: A Sense of Place. pp.108. Leicester University Press. 1999. London
  25. 최병식〈오픈 에어 뮤지엄, 에코뮤지엄의 지역유산 활용과 지역사회 연계 사례〉p.214. 조형교육 제 34집. 한국조형교육학회. 2009
  26. 최병식 〈오픈 에어 뮤지엄, 에코뮤지엄의 지역유산 활용과 지역사회 연계 사례〉p.201. 조형교육 제 34집. 한국조형교육학회. 2009
  27. 위그 드 바랭(Hugues de Varine, 1935-). 1967년부터 1974년까지 국제박물관협의회의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그 후 1982년부터 1984년까지 리스본의 프랑스-포르투갈 연구소(French-Portuguese Institute)의 소장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