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긴급 진단! 공공미술관의 위기, 그 대안은 없는가? ⑤

 

  ‘문화의 세기’에 접어들어 미술관에 대한 관심은 급증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2014년 관람객수는 230만 명을 기록함으로서 폭발적인 기대와 관심을 보여주었다. 전국의 미술관은 약 170개관을 넘고 있으며, 공립미술관이 50여개이다. 현재도 상당수 지자체에서 설립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인 팽창과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공미술관은 아직도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최근 국공립미술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문제들은 결코 일시적인 한계로 인하여 야기된 것이 아니며, 기본적인 구조에서 부터 논의와 담론형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필자는 1차로 5회의 국민일보 연재를 통해 가장 시급한 문제들을 짚어보고, 다양한 선진외국의 사례를 통해 대안을 모색하는 기회를 갖는다.

 

  <글 싣는 순서>

 

① 국립현대미술관, 제2의 도약이 필요하다-7.29(수)

② 기업보다 치열한 미술관 마케팅-7.30(목)

③ 미술관의 역사는 기부와 함께 시작되었다-7.31(금)

④ 흔들리는 공공미술관-8.1(토)

⑤ 미래의 미술관을 말한다-8.2(일)

 

⑤ 미래의 미술관을 말한다

 

  “큐레이터를 정의하시오”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 들 중 한 사람이 말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들….” 잠시 침묵이 있었다.

  한국의 미술관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불과 20여년 정도이다. 이 상황에서 어느 곳을 봐도 문제는 있다. 그 중에서도 박물관학에 대한 학술적 연구 성과나 큐레이토리얼 스터디는 특히나 미진하다. 미래 미술관의 지평을 열어 가는 데 있어 가장 큰 난제는 자본과 비순수로부터의 압박이며 타협이다. 큐레이터들이야말로 외부적 요인을 흡인하고 자기언어로 해석하여 사회의 소금으로 거듭나는 마술 아닌 마술을 부릴 수 있는 주인공들이다. 세계적인 큐레이터로서 전설과 같은 스위스의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해럴드 제만 등도 그들 혼자서만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교육, 현장, 제도 역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한국의 공공미술관들이 나아가야할 방향에서 인재를 양성하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몇 백억을 들여 건물을 지을 생각은 하지만 운영할 사람을 기르는 일에는 아예 외면한다. 일정기간 연구 성과를 요하는 기금을 마련하고, 학문, 기획, 마케팅 등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스터디 과정이 시급하다. 시간이 걸리고, 적중률도 불확실하지만 그래도 세상의 모든 예술은 모두 인간이 창조하고 있지 않은가?

 

*수장고형 미술관이 시급하다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국립초상화갤러리 수장고형 전시실 수장고, 전시실, 아카이브 등의 기능을 복합적으로 수행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이와같은 수장고형 미술관, 전시실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국립초상화갤러리 수장고형 전시실
수장고, 전시실, 아카이브 등의 기능을 복합적으로 수행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이와같은 수장고형 미술관, 전시실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명품을 컬렉션하고 당대 최고의 전시를 개최하는 것은 미술관의 꿈이다. 그러나 작품 한 점에 수억, 수백억원을 넘나드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이러한 생각들이 그야말로 꿈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에서 최근 세계적으로 두 가지 뮤지엄 형식이 각광을 받고 있다. 하나는 수장고형이고 다른 하나는 전시중심이다.

  수장고형의 특징은 미술관에 소장된 많은 작품들을 있는 그대로 관람객에게 개방하는 형식이다. 전시실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은 불과 몇 %밖에 안 되며, 대부분의 컬렉션은 수장고에서 잠을 자는 형국이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고 대중에게 보다 쉽고 가깝게 개방하고자 하여 1970년대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인류학 박물관에서 처음 시도되었으며, 스미스소니언, 메트로폴리탄, 매닐 컬렉션, 스위스의 사울라거 미술관, 일본의 가나자와시립 매장문화재 수장센터 등이 주도하였다.

  현재 컬렉션은 국립현대미술관 1만여 점, 서울시립미술관 4천여 점에 달하고, 수장고에 들어가 보면 시대별, 작가별 주옥같은 작품들이 즐비하다. 특히나 정부미술품을 포함한 아트뱅크를 실시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대형 수장고형 미술관을 설립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주요작가들의 작품을 무상 보관하는 시스템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미술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우리의 현실에서 줄잡아 수 만점의 작품들이 개인 작업실, 주거공간 등에서 사장되거나 손상되고 있다. 엄선을 통해 수준급 작품들을 국가가 무상 보관하고, 작품들을 미술은행의 기능으로 연계할 수 있다. 작품 대여 대상을 학교, 병원 등으로 대폭 확대하여 국민 문화향유의 기회를 창출하는 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형 수장고미술관’이라고 할 만한 이 시스템은 초안을 대폭 확대하여 청주 전매청건물을 활용하는 안이 가장 적격이다. 공립미술관 수십개를 짓는 것보다 저비용으로 대량의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작가들에게도 당면과제를 해결하는 안이 될 수 있다.

 

*전시에 올인하는 ‘살아있는 미술관’

아르코미술관 1974년에 개관되었으며, 공공갤러리적 성격으로 많은 역할을 하였다. 확대 개편하여 미술관과는 다른 차원의 실험적 대안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아르코미술관
1974년에 개관되었으며, 공공갤러리적 성격으로 많은 역할을 하였다. 확대 개편하여 미술관과는 다른 차원의 실험적 대안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디아비콘의 리처드 세라 작품 전시장 2003년 허드슨강변에 오픈되었으며, 대형공간에 거대한 작품들이 전시되어있다.

디아비콘의 리처드 세라 작품 전시장
2003년 허드슨강변에 오픈되었으며, 대형공간에 거대한 작품들이 전시되어있다.

  전시중심 미술관은 ‘제3의 미술관’ ‘살아있는 미술관’으로까지 불리고 있다. 특징은 소장기능을 최대한 가볍게 하면서 기획중심의 미술관을 운영하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는 명확히 말하면 미술관이라는 용어를 거부하며, ‘대안형 공공 전시공간’ 쯤으로 해석된다. 당대 실험적인 사조들을 직접 기획, 전시하기 때문에 ‘화이트 박스’로까지 불리는 정형화된 미술관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파격적인 경향과 실험을 바탕으로 한다. 미술관이라는 용어가 다소 근현대적 시대의 의미가 반영되었다고 하면 퍼블릭 갤러리는 철저히 현재 진행형인 당대의 예술을 중심으로 하는 성격이다.

  영국의 ‘퍼블릭 갤러리’, 독일의 ‘쿤스트 할레’ ‘쿤스트 페어라인’, 미국의 디아아트 재단에서 운영하는 ‘디아아트센터’가 있다. 영국의 사례로는 서펜타인 갤러리, 발틱, ICA, 캠든 아트센터, 화이트채플 갤러리 등이 대표적이다. 영국 미술계가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데에는 yBa(young British artists·1980년대 말 이후 나타난 영국의 젊은 미술가들)의 역할도 컸지만 바로 퍼블릭 갤러리의 역할도 절대적인 힘이 되었다. 그 중 서펜타인은 1970년 영국 예술위원회가 설립했다. 런던에서는 테이트 모던의 ‘유니레버후원 터바인 홀전시’와 2000년부터 주최하는 서펜타인의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수십만은 넘을 것이다. 그만큼 유명한 이 전시는 자하 하디드, 알바로 시자, 렘 쿨하스, 올라퍼 엘리아슨, 프랭크 게리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을 기획하였다.

  1974년 설립된 미국의 디아재단의 디아비콘과 디아첼시는 세계 전문가들의 부러움을 사는 곳이다. 다소나마 유사한 기능을 하는 우리나라 기구로는 ‘아르코미술관’이 있다. 최근 들어 1974년 개관된 아르코미술관의 공공적 기능이 미미하다. 전국에 4~5개 정도의 전시중심 공간을 만들고 20여개의 대안공간, 50여개의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연계하여 새로운 세대, 파격적인 이념과 현상들을 발굴하고 지원할 때 미래전략은 밝아진다.

 

*미술관에서 문화민주주의를

  ‘문화 민주주의(Cultural Democracy)’라는 말이 있다. 영국이 1999년 이후 점진적으로 국립과 대학뮤지엄에 실시한 무료관람제도에 앞서 즐겨 사용한 구호이다. 즉 국민들은 뮤지엄의 소유, 볼 권리, 즐길 권리가 있다는 의미이다.

  굳이 어려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유럽의 많은 뮤지엄들이 시민들과 관광객의 안식처가 되고 필수코스가 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물론 오랜 역사와 즐비한 명작을 소장한 화려함도 그렇지만 대중을 위한 섬세하고 파격적인 프로그램의 역할이 가장 크다. 한 가지만 예로 들면 ‘나이트 뮤지엄’이다. 보통은 금, 토요일 저녁에 진행되는 크고 작은 공연, 유료 관람료 할인, 다양한 토크 등을 진행하는데 특별 프로그램은 범 유럽권에서 실시된다.

  체코 ‘프라하 뮤지엄의 밤’은 6월 하루 동안 오후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열린다. 전체 프로젝트는 국립박물관·프라하 공공 운송 회사·체코 뮤지엄 갤러리 협회가 주최하며, 체코 문화부에서 재정을 지원하고, 20만명 이상이 참여한다. 폴란드에서도 ‘박물관의 밤’이 있으며, 프랑스도 하얀 밤이라는 뜻의 ‘뉘 블랑쉬’ 야간 문화 페스티벌이 있다. 페스티벌은 해가 질 때 시작해 동틀 때까지 진행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산타 모니카시에서는 ‘뉘 블랑쉬’에 영감을 받아 부두와 해변에서 백야제를 열었고, 오스트리아, 독일 등에도 ‘뮤지엄의 긴 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간혹 미술관 공연이 있다. 그러나 한여름밤 며칠 정도는 밤을 새워서 대화, 공연, 감상 도슨트, 영화상영 등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미술관프로그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국립극장, 오페라단, 음악대학과 협업을 하여 전국의 뮤지엄에서 펼쳐지는 나이트 뮤지엄을 통해 미술인은 물론, 대중들과 하나가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평생 작업을 해도 자신의 작품이 단 한번 전시, 소장될 수 없는 작가들이 99%이다. 이러한 기회를 통하여 소통이 가능하다.

 

*미술관의 마력, 하나가 되는 곳

덴마크 코펜하겐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 야외 자연과 하나가 된 건축과 작품을 만나게 된다. 스웨덴의 해협이 보이는 곳에 건축만 30년이 소요되었고, 다시 가고 싶은 미술관으로 손꼽힌다.

덴마크 코펜하겐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 야외
자연과 하나가 된 건축과 작품을 만나게 된다. 스웨덴의 해협이 보이는 곳에 건축만 30년이 소요되었고, 다시 가고 싶은 미술관으로 손꼽힌다.

  미술관이 일방적으로 작품을 감상, 스터디하는 공간만이 아니라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서 언제든지 쉽게 찾을 수 있고, 안식과 함께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외부공간을 중점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건물이 압도하지 않으면서 권위의 문턱을 없애는 한편, 실내와 야외를 수평구조로 설계한다.

  아름다운 미술관 역시 핵심 키워드이다. 최근 아랍에미리트의 사디아트 섬의 뮤지엄 프로젝트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퐁피두센터에 대하여 ‘외관만으로도 만족한다’는 관광객들의 반응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전시장에 입장하는 사람 못지않게 앞의 광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기타를 연주하고 춤을 춘다. 국적과 인종, 나이 따위는 의미가 없다. ‘하나가 되는 곳’, 미술관의 마력이다.

  전원형미술관 역시 보석과 같다. 덴마크의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 미국의 게티센터, 프랑스의 마그재단 등 많은 곳들이 있다. 우리나라의 공공미술관은 건축에서부터 경직된다. 정원개념이 아예 없고 딱딱한 직선 일색에 마음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할 곳이 마땅치 않다.

  요즈음 ‘힐링’이 대세이지만 지친 심신을 누일 곳은 미술관만큼 적격인 공간도 없다. 더군다나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마술사들이 있는 곳이면, 더욱 찾고 싶을 것이다. ‘찾고 싶은 미술관’ 바로 어렵지 않은 미래의 키워드이다.

-최병식 경희대학교 교수

 

 

국민일보 2015년 08월 02일
http://m.kmib.co.kr/view.asp?arcid=0009711474&code=61171111&sid1=c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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