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이후 곽인식 작품에 나타난 물질성 연구

제8호 《Art Pavilion》수록. 2017년 11월 발행

박환 1

1. 머리말
2. 1960년대 이후 곽인식의 작품 경향

    1) 1961년-1968년: 소재의 물질성 탐구
    2) 1969년-1988년: 소재를 표면으로 환원

3. 1960년대 이후 곽인식의 작품 속 물질성에 대한 특징

    1) 매체의 고유성 실험
    2) 행위를 통한 사물의 본질 인식

4. 맺음말

1. 머리말

 

곽인식은 1919년 4월 18일 경상북도 달성군 현풍면 상리 출생으로 현풍공립보통학교 재학시절부터 미술에 재능을 나타냈다. 1930년대 후반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대부분의 일본인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일본에서 앵포르멜(Informel), 구성주의 등 다양한 영향을 받아 이러한 화풍의 작품 활동을 이어가던 곽인식은 1960년대 접어들면서 다양한 사물 오브제를 사용한 작품을 제작하게 된다. 그는 실험적이고 다양한 오브제 작업을 통해 무수히 많은 물질의 물성을 탐구하고 그것을 화폭에 담으려 노력했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유리, 철 등 무겁고 단단한 오브제를 활용하여 작업하던 그는 이후 일본의 화지(和紙)에 수묵을 사용하여 이전과는 대조적인 작업을 선보였다.

우리나라의 근대 미술사는 전쟁과 식민지배, 남북의 분단 등의 이유로 전통적인 계승을 통한 발전적인 측면보다 단절과 왜곡의 역사와 그 맥을 같이 한다. 그로인해 한국에 유입된 서구적인 근·현대 미술은 20세기 초 미술의 중심지인 유럽이 아닌 일본을 통해 이루어졌다.

당시 한국은 일본의 압력에 의해 근대사회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에 따라 정치·사상적으로 큰 변동이 일어났다. 조선총독부는 3·1운동 이후 무단적(武斷的) 식민지 정책에서 유화적인 문치정치(文治政治)로 이행하려는 정책 속에서 우리 민족의 문화를 배제할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한국은 민족의 주체성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던 암담한 시대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근대화를 이룩하기 위해 많은 선구자들이 일본에 건너가 그림을 공부하고 작가로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곽인식(郭仁植, 1919-1988) 또한 유학을 통해 독창적인 예술관을 형성해 나간 작가 중에 한 명이다.

미술사적 관점에서 볼 때 곽인식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파악된다. 첫 번째로 그는 일본의 모노하(もの派) 2보다 먼저 사물의 물질성 또는 사물 간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다. 또한 그는 한국, 일본 양국의 작가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두 번째로 곽인식의 작품은 다양한 변화과정을 거친다. 193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 까지 그의 작품 경향은 구상화와 추상화는 물론 초현실주의, 앵포르멜, 모노크롬 등 다양한 변모를 거쳤다. 이렇게 다양한 작품 경향에도 그의 작품에는 일관된 특성과 연구 성향이 나타난다.

본 논문은 단기적인 국내 활동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곽인식 작품에 나타나는 물질성 연구를 통해 한국 미술사에 다양한 흐름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구 방법으로 곽인식 작가에 관한 기록이나 도록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하였다. 2장에서 1960년대 이후 곽인식 작품의 특징을 두 시기로 나누었다. 1기는 1961년부터 1968년까지로 작가가 시대적 상황 속에서 평면적인 모노크롬 회화 작품에서 벗어나 돌이나 나무, 유리, 점토, 철판 등 물질의 특성 탐구하고 독특한 구조의 형상적인 작업을 이어가던 시기이다.

2기는 1969년부터 작가가 세상을 떠난 1988년까지로 그동안 다양한 실험적 작품을 통해 소재의 물질성을 탐구하던 중에 종이라는 친숙한 소재를 발견하게 된다. 곽인식은 얇은 반투명의 일본 종이인 화지를 사용하여 이전과는 다르게 평면의 화폭 안에서 물질들의 존재적 가치와 깊이를 연구하게 된다. 이러한 곽인식의 소재와 물질을 탐구한 작품들 통해 나타나는 물질성과 특징을 두 가지로 분석하였다.

첫 번째로 곽인식이 소재의 물질성 연구를 통해 소재와 매체가 가지는 고유성에 대해 제시하는 문제점과 물질의 속성과 실존적 존재의 본질에 다가가려 하는 방법을 분석하였다. 두 번째로 작가가 작품을 제작하는 주체적인 행위와 객체적인 사물의 일체화를 통해 사물의 본질을 인식하는 것을 연구하였다.

2. 1960년대 이후 곽인식의 작품 경향

 

1) 1961년-1968년: 소재의 물질성 탐구

 

곽인식은 1930년대 후반 그의 친형인 곽원식(郭源植)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일본 도쿄(東京)에 정착하여 일본미술학교(日本美術學校)에서 수학하였다. 일본미술학교에서 미술 교육을 받은 곽인식은 1937년 일본의 독립미술협회전(独立美術協会展) 입선을 하며일본 미술계에 등장하였다.

곽인식 「작품 61(Work 61)」 1961. 캔버스에 유채. 103×72.5㎝

곽인식 「작품 61(Work 61)」 1961. 캔버스에 유채. 103×72.5㎝

이후 1949년 이과전(二科展)에 출품한 현대적인 표현주의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또한 그는 1950년대 초반에 초현실주의적 특징을 지닌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고 중반 이후부터는 작품 「작품 61(Work 61)」과 같이 앵포르멜 영향을 받은 물감의 마티에르가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작품을 제작하였다. 이 시기 일본에서는 초현실주의와 추상미술이 미술계의 가장 진취적인 흐름이었다.

그러나 1940년대 초에 초현실주의 작품들은 공산주의로 오해받아 탄압되었다. 그로인해 이 시기에 대다수의 작가들은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어 최소한의 표현과 상징을 통해서만 작품을 제작하고 발표할 수 있었다. 3

곽인식의 작품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다양한 변모 끝에 모노크롬 회화로 발전하면서 형식적으로 단순한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곽인식의 작품은 1960년대부터 돌연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깨진 유리를 작품으로 제시하고 종이나 철판을 단순히 변형한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사물이 지닌 물성을 탐구하는 과정으로 변화한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해체되었던 각종 미술 단체가 재건되었다. 이 시기 일본 미술 그룹들은 더 이상 전통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전위적인 활동을 전개한다. 대표적으로 1954년 일본의 간사이 지방에서 요시하라 지로(吉原治良, 1905-1972)를 중심으로 설립된 구타이미술협회(具体美術協会, 이하 구타이)와 1951년에 결성된 전위예술그룹 실험공방(実験工房)이 있다.

곽인식 「작품 61-1010」 1961. 재료 미상. 사이즈 미상

곽인식 「작품 61-1010」 1961. 재료 미상. 사이즈 미상

또한 1957년 후쿠오카에서 결성되어 키쿠하타 모쿠마(菊畑茂久馬, 1935- )나 사쿠라이 타카미(桜井孝身, 1928-2016) 등 쟁쟁한 작가들을 배출한 큐슈하(九州派)도 지방 미술단체의 움직임으로는 무시할 수 없다.

1960년에 결성되어 반(反)예술을 표명하며, 다다(dada)라고 써진 천을 미이라처럼 몸에 감고 거리를 돌아다녔던 요시무라 마츠노부(吉村益信, 1932-2011), 사람의 귀만 조각으로 만들어 유명세를 탄 미키 토미오(三木富雄, 1937-1978) 등을 배출한 네오 다다이즘 오르가나이자즈(ネオ・ダダイズム・オルガナイザーズ), 타카마츠 지로(高松次郎, 1936-1998), 아카세가와 겐페이(赤瀬川原平, 1937-2014), 나카니시 나츠유키(中西夏之, 1935-2016) 등 멤버 세 사람의 이름 첫 글자를 영어로 바꿔 그룹의 이름을 만든 하이레드센터(ハイレッドセンター) 등이 있다. 4

또한 일본 미술계는 국제적으로도 활발한 교류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구타이미술협회는 프랑스의 미술비평가 미셸 타피에(Michel Tapie, 1909-1987)와 교류하였고 타피에는 일본 미술계의 앵포르멜 회화를 국제적으로 소개하고 일본 미술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5 타피에는 앵포르멜과 일본 미술의 유사점을 파악하였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이론을 대변할 수 있는 일본의 추상 화가들을 세계적으로 소개하였다.

또한 1956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아시아 최초로 일본 국가관을 세웠다. 이처럼 일본은 패전 이후 미국의 냉전 정치 체계에 편입되며 개인의 자유와 개성의 표현이 장려되고 예술의 본질과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6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 곽인식은 1960년대부터 평면적 회화작품에서 벗어나 돌이나 나무, 유리, 점토, 철판 등 물질의 특성 연구에 몰두하며 독특한 구조의 형상적인 작품을 추구하였다.

곽인식 「작품 61-1012」 1961. 재료 미상. 사이즈 미상

곽인식 「작품 61-1012」 1961. 재료 미상. 사이즈 미상

곽인식은 1961년 3월 일본 타케가와화랑(竹川画廊)에서 모노크롬 작품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에는 난텐시화랑(南天子画廊)에서 그의 개인전 ‘곽인식개인전(郭仁植個展)’을 통해 획기적으로 변화된 모습으로 화면을 가로로 상처 낸 작품 「작품 61-1010」과 나사 너트들을 붙여놓은 작품 「작품 61-1012」을 전시했다. 이는 곽인식의 물성 연구 초기 단계로 볼 수 있다. 또한 이 시기부터 그는 자신의 작품에 특정한 제목 없이 모두 ‘작품’이라고만 명명하였고 제작된 날짜 등을 같이 붙이기도 하였다.

1961년에 발표한 모노크롬 작품은 판넬이나 캔버스에 안료와 석고를 결합하여 두꺼운 물성을 조성하였다. 이어서 그는 판넬 위에 석고를 바르고 철선이나 바둑돌 등을 넣고 오일이나 수성도료를 섞어 완성하였다. 다음해 츄오화랑(中央画廊)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는 작품 화면에 조성되는 사물들이 보다 광범위해져서 유리조각, 전구, 선글라스, 젓가락, 깨진 잔 등 일상적인 사물들이 등장했다.

이후 유리 깨기 작업 등이 지속되고 1963년에는 캔버스를 인두로 태우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이후 1965년부터는 놋쇠판이나 동판, 철판 등의 금속 물질을 사용하여 작업하였다. 이러한 금속 물질을 이용한 작업은 금속을 긁거나 찢고, 꿰매거나 찌그러트리는 등 행위를 접목시켜 물성을 드러내는 작품들이다.

일본의 미술 평론가 우에무라 타카치요(植村鷹千代, 1911-1998)는 곽인식이 깨진 유리를 이용하여 화면에 덧씌운 작품 등이 미적 판단을 내리기 위한 어떠한 근거나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품에 상처 내는 것을 언어로 하는 것은 현대적인 방법 중 하나라고 인식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에무라는 곽인식의 작품이 작가가 소재주의적 관점에 초점을 두고 있는 실험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7 즉 곽인식의 작품은 단지 독특한 소재를 활용한 이색적인 작품으로 밖에 이해되지 못한 한계가 있다.

곽인식은 1970년대에 들어서 수년간 공백을 가지게 된다. 공백기 이후 1975년 이후부터는 색점들로 이루어진 추상화가 그의 작품에 주류를 이루게 된다. 1968년에는 철판에 원형의 구멍을 내는 작업을 지속하다 다음해 종이를 이용하는 작업으로 넘어가고 1970년대 후반에는 색점(色點)으로 이어져 발전된다. 그의 원에 대한 애착을 보여주기도 한다.

2) 1969년-1988년: 소재를 표면으로 환원

세키네 노부오(関根 伸夫) 「位相-大地(위상-대지)」 1968. 시멘트. 기둥, 구멍 각 220×270㎝(직경)

세키네 노부오(関根 伸夫) 「位相-大地(위상-대지)」 1968. 시멘트. 기둥, 구멍 각 220×270㎝(직경)

미술의 표현에 있어서 재료나 물감은 원래 표현행위의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목적으로 가치전환이 되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세계적 추세로서 나타나게 된다. 이것은 일반화된 경향이며 개별적으로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1891~1876)의 프로타쥬(Frottage) 기법 등이 이보다 앞서 시도된 사례도 있다. 인간의 사상이 언어에 의해서 실천되고 표현되는 현상처럼 예술가의 행위도 무언가에 의해 표현될 수밖에 없다. 사상이 스스로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소재가 없는 예술도 공허한 관념에 불과하다. 8

이 같은 세계적 흐름 속에 1970년대 전후 일본에서는 국제적인 교류를 통한 전위적인 흐름 속에 기존의 예술 개념들이 점차 무너져가고 있었다. 1968년에 제작된 세키네 노부오(関根伸夫, 1942-)의 「位相-大地(위상-대지)」가 단순한 트릭으로 이해되고 있을 당시 이우환이 “사물 상태의 일시적 변화일 뿐이다.”며 시점의 전환을 이루어냈다. 9

1970년대 이후 일본에서는 새로운 방향으로 회화를 재고하려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 영향으로 일본의 많은 작가들이 회화로 작업 방향을 다시 전환하였다. 10 곽인식은 1970년대에 들어서 대외 활동이 줄고 수년간 공백기를 가지게 된다. 공백기 이후 신작을 발표하기 시작하는 1975년 이후부터는 점들로만 구성되어진 추상화가 집중적으로 제작되었다.

곽인식이 1970년대 후반부터 참가하는 기획전의 특성은 미니멀아트 이후 미술의 흐름을 조망하는 것이 주를 이룬다. 일례로 1976년 ‘제2회 시드니 비엔날레’는 ‘국제 미술의 최신 형식들’이라는 주제로 기획되어 환태평양 문화권을 주축으로 하는 미국 캘리포니아, 뉴질랜드와 호주, 한국과 일본의 미술계의 동향과 흐름을 조명한 전람회였다. 미니멀아트의 등장 이후 미술은 장르 간의 경계와 구분이 모호해졌다. 그래서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전람회를 통해 다양한 문화권의 작가들과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려 했다. 11 곽인식은 ‘시드니 비엔날레’에 자연석의 표면을 끌로 두들긴 작품 「무제」 1점을 출품했다.

곽인식 「무제」 1976. 돌.  28×22×20㎝. 가나아트센터 소장

곽인식 「무제」 1976. 돌. 28×22×20㎝. 가나아트센터 소장

곽인식의 작품이 회화로 발전해 나아가는데 자연석 작품은 중요한 전환점으로 이와 동일한 방식이 평면 작품에도 응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연석에 끌을 이용하여 점을 새기는 방식이 붓으로 대체되었다. 점을 찍는다는 ‘행위’에 대한 사실을 자각한 곽인식은 1960년대부터 타계하기 전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 특징을 유지하였다.

과거 그의 전위적인 오브제 작품은 그동안 일본 모노하와도 많은 논의가 되어왔다. 하지만 그는 평면 작품도 주어진 소재에 만족하지 않고 캔버스 대신 화지를 사용하거나 나무나 다른 소재를 표현매체로 사용하는 등 소재를 개량하거나 새롭게 발견하려 시도하였다. 12

곽인식의 사물의 존재에 대한 탐구, 존재의 원형에 대한 관심은 1969년에 이르러 일본 화지를 만나게 되면서 작품의 내용은 일관되지만 외형적으로는 급격한 변모를 겪게 된다. 일본의 전통 종이인 화지는 매우 얇고 우리의 한지(韓紙)와 재질과 질감이 유사하다. 이러한 화지는 동판이나 철판 같은 다루기 어려운 소재를 대체 할 수 있는 재료이다. 13 그는 다양한 소재를 발견하려는 시도 끝에 화지를 발견한 것이다.

화지가 그의 작업에 적합한 소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1968년 금속을 통해 물질의 표면과 이면, 즉 안과 밖의 동일성을 나타내고자 시도된 작업을 이듬해부터 종이라는 사물을 통해 시도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당시 그는 「무제」라는 제목으로 사각형 속에 원이 있는 일련의 작품을 발표한다.

그 중 종이에 원을 그린 작품을 보면 종이라는 사각형 속의 원은 원의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사각형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 작품 속 원은 분리되어 있다고 할 수도 없고 붙어 있다고 할 수 없는 모호한 상태로 남게 된다.

이러한 그의 작업에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물질의 표면과 이면의 문제는 1969년 종이를 이용한 작품을 통해 집약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후 곽인식은 종이 위에 담채로 찍은 무수한 원형의 반점들을 반투명의 종이 위에 겹치는 행위를 여러 차례 반복하였다. 이를 통해 종이의 물성을 이전과 다른 관점으로 인지하고 이를 자신의 작업에 접목하였다.

무수한 원형의 반점들이 다양한 색으로 때로는 동일한 색으로 화지 위를 가득 채우기도 하고 때로는 일부분을 비우기도 하면서 공간을 창조한다. 이러한 반점들과 공간의 대비는 상호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대신하기도 하지만 각각의 이유를 가진 실재적 존재이다. 그들은 서로 중첩되거나 어울리면서 상호 존재로서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14 반점들은 화지라는 공통된 장소에서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공존한다. 아래위로 겹쳐진 반점들은 중첩되면서 더욱 깊이를 가지게 되는데 흡수성이 뛰어난 화지는 그 깊이를 증가시킨다.

종이로서 표면과 이면이 분명하지 않은 화지는 반점들을 받아들이며 스스로의 두께와 내면의 깊이를 나타내게 된다. 존재간의 간극은 화지의 얇은 두께 만큼 인식하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그 색의 반점들이 표현되는 곽인식의 작업에서 사물에 대한 실존적 존재의 인식이 드러남으로 인해 세상 만물의 존재와 생명을 보여준다. 15

곽인식이 반투명의 화지 위에 겹겹이 쌓아 올린 색면의 구조는 섬세하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사람의 마음 속 깊이 스며드는 설득력을 가진다. 이러한 그의 평면회화 작품에서 상징하고 있는 것은 태양이 아닌 달빛이다. 달빛에 의해서 투영되는 음영의 세계이다. 이는 작가가 걸어온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인생의 고적감을 나타나며, 내재된 작가의 정신세계로 끌어들인다. 그것은 물질과 생명의 움직임을 색면에 의해 표현하며 새로운 생명을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이차원의 세계를 벗어나서 독창적인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다. 16

이러한 화지와 채묵, 담채와의 만남을 통해 나타나는 표면과 이면의 문제는 1980년대까지 지속된다. 색면의 구조적 층위를 형성시켜 전면성을 확보하고 동시에 직감을 투명화 시킴으로써 깊이와 표면의 무한성을 갖추게 하여 하나의 빛으로 환원한다. 물질성과 존재에 대한 집요한 연구를 통해 결국 단순한 물성이 투명한 빛으로 승화된다.

곽인식은 종이와 자연석이라는 상반된 두 소재를 모두 ‘표면’으로 환원하였다. 또한 그는 자연과 예술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순수한 사물에 형식을 부여하는 행위에 주목했다. 종이와 자연석의 표면에 반복적으로 점을 입힌 그의 작품들은 1976년 이후 지필묵과 색의 반점으로 대체되었고 화려한 추상화로 변하게 된다.

 

3. 1960년대 이후 곽인식 작품에 나타는 물질성의 특징

 

1) 매체의 고유성 실험

 

곽인식의 작품은 1961년과 이듬해 모노크롬 회화 작품과 그 위에 깨진 유리를 결합하는 형식이 나타나면서 매체의 고유성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후 동판과 놋쇠, 종이 등의 다양한 소재를 거치며 물질성을 지속적으로 연구한다. 사물 본래의 용도에서 벗어난 소재들은 ‘깨뜨림’과 ‘배열’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또한 이 시기 그의 작품은 단순한 형태의 원을 지향하기 시작했다. 이는 물질에 드러나는 특성을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좀 더 분명하게 시각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곽인식은 유년시절 일상 속에서 유리에 낯선 감정을 느끼고 그 투명함에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1960년대 대형 유리를 접하고 스스로 압도당했다고 말한다. 유리의 속성을 철과는 상반된다. 그렇기 때문에 유리를 조작하는 데에는 이전과는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했다. 또한 유리와는 반대로 종이는 부드럽고 약한 소재이기 때문에 작품을 제작함에 있어 용이하고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사용되어 온 친밀한 소재임을 강조했다. 17

그의 1960년대 초·중반의 작업은 화면과 사물, 화면과 물질의 만남을 통해 물질의 실존적 존재를 드러낸다. 이후 이것은 화면과 물질에서 물질 자체만으로 변모한다. 물질과 물질의 만남이나 물질과 인간, 공간 등의 동등한 조우를 통해 존재 자체의 본질과 실존적 의미를 강조한다. 대표적으로 동판의 중심을 찢어서 이를 다시 철사를 가지고 꿰맨 작품 「작품 65-5-1」은 물질 고유의 속성에 도전하여 그 물질의 속성과 본질을 규명하고자 하는 작품으로 이해된다.

곽인식 「작품 65-5-1」 1965. 놋쇠판, 철사.  100.5×107.5㎝

곽인식 「작품 65-5-1」 1965. 놋쇠판, 철사. 100.5×107.5㎝

이 작품은 우선 동판의 중심을 자른다. 이는 동판이라는 물질의 물성과 존재에 대한 본질을 드러내려는 행위이다. 중심을 갈라서 동판의 속을 드러내 보았지만 결국 동판은 동판이라는 물질에 불과한 것을 확인한다. 즉 물질로서 동판은 그 내면도 동판인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동판을 원래의 상태로 환원하려한다. 그러나 원상복구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동판은 철사를 이용하여 봉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내를 보려하는 이들에게 드러내 놓을 수밖에 없다. 결국 동판은 절대 불변의 존재로 실존적인 물질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이와 같은 사물의 본질적인 고유성을 연구한 작품으로 「작품 65-6-3」이 있다. 이 작품은 동판의 표면을 예리한 사물로 긁어서 상처를 낸다. 물질 내면에 물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동판이라는 매체의 고유성을 드러내기 위해 단지 반복적으로 표면을 긁었다. 이렇게 단순하고 반복적으로 긁는 행위는 물질과 물질의 특성을 규명하기 위한 단순한 행위 일 뿐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동판 내부에 있던 것이 표면에 드러나게 된다. 동판의 두께에 가려져 있던 것이 긁힌 자국으로 인해 표면에 나타난다. 이를 통해 물질의 모든 것은 표면뿐만이 아니라는 의식이 강하게 느껴진다. 18

이러한 물질이나 매체의 고유성에 대한 연구는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구타이미술과도 연관성을 가지고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곽인식과 구타이 모두 물질 자체를 강조하였고 행위의 특성을 화면에 그대로 나타내고자 하였다. 또한 구타이의 리더 요시하라 지로와 곽인식 모두 말년에 원(原)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였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19

곽인식 「작품 65-6-3」 1965. 놋쇠판.  92.0×99.0㎝

곽인식 「작품 65-6-3」 1965. 놋쇠판. 92.0×99.0㎝

요시하라 지로가 구타이미술의 물질은 변모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처럼 구타이는 재료의 물질성을 강조하였고 그 물질성을 전통적인 미술의 틀에서 해방시키려 하였다. 물질성과 정신을 분리하여 사고하는 서구의 사상과 달리 구타이의 미술은 재료의 물질성을 정신의 하위에 두지 않았다. 즉, 재료를 단순히 정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재료를 작가 개인의 미적 의식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작가의 주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소재가 되는 재료 자체가 가지는 특성을 나타내도록 하였다.

구타이는 물, 나무, 모래, 돌, 진흙 등 자연적인 재료와 옷, 전구, 파이프, 금속 등의 공업제품, 공, 풍선, 비닐, 종과 같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평범하게 접하고 취급할 수 있는 비예술적인 재료를 포함하여 작품을 제작하였다. 이렇게 그들은 다양한 재료를 연구하고 이러한 재료들에서 그 물질성과 특징을 찾았으며 그 특징을 통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예술의 형태를 보여주었다.

곽인식 역시 전구나 금속, 유리, 나사 등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비예술적인 재료를 포함하여 작품을 제작하였다. 이러한 소재의 고유성과 물질성의 연구를 통해 전통적인 예술이 아닌 새로운 행태의 예술 추구한 점에서 같은 시기에 활동한 구타이와의 유사성을 확인할 수 있다.

 

2) 행위를 통한 사물의 본질 인식

 

곽인식 「작품 65-6-2」 1965. 황동판, 구리선. 117×72㎝.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곽인식 「작품 65-6-2」 1965. 황동판, 구리선. 117×72㎝.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곽인식은 반복된 스크래치를 통해 표면과 이면(裏面)이 함께 공존하는 현실과 사물의 물성을 탐구하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물성이라는 전제 안에서 표면과 이면이라는 것은 인식의 차이일 뿐 고유의 본질에서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작가의 자연과 물질에 대한 인식의 과정으로서 행위에 중점을 두고 있는 작품으로 「작품 65-6-2」가 있다.

이 작품에서 그는 동판의 특정 부분을 망치와 같은 사물로 두드려서 자국을 낸다. 이후 이를 접었다 폈다하는 행위를 반복한다. 이러한 반복적 행위의 과정을 통해 동판은 구부러지고 어떤 부분은 찢어지거나 구멍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상처 난 동판은 표면과 이면이 한 표면에 함께 드러나게 된다. 작가는 상식적으로 불가능 할지 모르는 표면과 이면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상황을 주체적 행위를 통해 실현하였다.

이후 작가는 이 물질에 난 상처를 다시 봉합하여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으려 하지만 이미 표면과 이면이 공존하게 된 또 다른 사물로서의 물질이라는 사실을 되돌려 놓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작가의 주체적인 행위를 통해 표면과 이면의 차이는 이를 인식하는 주체가 인간이고 이는 관념에 차이일 뿐 사물의 물성과 본질은 어떠한 변화도 없다는 인식의 문제를 제기한다. 20

곽인식 「무제Q103」 1980. 화지에 채색. 73×53㎝

곽인식 「무제Q103」 1980. 화지에 채색. 73×53㎝

1970년대 이후 종이를 사용하기 시작하며 곽인식은 자신의 작업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소재가 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 종이에 색점으로 발전하게 된다. 곽인식은 종이에 색점들을 찍으면서 종이라는 사물의 물성에 새로운 관점을 인식하고 작업에 적용한다. 그는 종이에 점묘를 찍는 작가 자신도 역시 사물이라고 말한다. 즉 나라고 하는 사물이 종이와 같은 사물을 마주하는데 이 점묘에 있어서 나 자신인 사물이 점이 되어가는 기분이라고 설명한다. 21

위에서 그가 말한 것처럼 세상 만물을 상대로 바라보는 태도를 취하고, 자기 자신 또한 사물로 인식한 채 종이에 무수한 점을 찍고 점이 종이에 스며드는 과정을 통해 무아지경에 이를 것이다. 즉, 그 시간은 그가 종이와 대화에 몰두한 시간이다. 주체적인 행위와 그 행위를 하는 자신을 객체적인 사물화 하여 존재의 본질은 나타냈다.

곽인식은 다양한 물질과 소재를 이용한 실험적인 연구를 통해 철저하게 오브제에 대한 관심과 대화를 강조한다. 그의 작품 소재들은 대부분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며 그가 어린 시절을 지낸 고국에서 사용한 놋쇠나 강가의 자갈, 종이 등이다. 이러한 소재들에 대한 애착이 점차 물질 그 자체에 대한 애착과 애정으로 옮겨지고 만년에는 화지가 가지고 있는 물질의 특성을 살려 색을 활용한 섬세한 표현으로 나타난다. 이는 곽인식이 한국과 일본의 양국 간의 국경을 초월하여 양자의 민족성을 바탕으로 하면서 보편적 예술관을 만들어낸 결과이다. 또한 그의 이러한 연구와 작품 활동은 일본 전후 미술에 영향을 미쳤다.

 

4. 맺음말

 

미술사적 위치나 작품 세계로 비추어 볼 때 지나치게 평가받지 못하는 작가들이 있다. 곽인식 작가 또한 그 중 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이나 위상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오랫동안 일본에 머물며 한국을 떠나 있었고 한국에서의 활동이 극히 짧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해방 이후 귀국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정착하였다. 또한 1980년대 초 국내전을 갖기 까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1980년대 초부터 개인초대전과 그룹초대전 등 활발한 활동을 보였으나 1988년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그의 국내 활동은 사실상 제한적이고 단편적이다. 22

곽인식은 불행한 역사와 민족 분단의 상황 속에 고통과 슬픔으로 고독한 삶을 살아왔다. 한국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에 미술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 거쳐 그곳에 남을 수밖에 없게 되어 이방인의 삶을 살았다. 오랫동안 국내와 단절된 재일교포로서의 생활은 자기세계를 구축했던 선구자의 길을 걸었다. 그의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작품과 연구 활동은 일본 전후 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으로 건너간 대부분의 화가들이 귀국했지만 그는 계속 일본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결국 1988년 타계할 때까지 주된 활동은 일본에서 이루어졌다. 식민지하에 일본으로 건너간 많은 사람들이 재일교포가 되어 일본 사회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그로인한 피해가 오늘날까지 잔재해 있다.

그러나 그는 도전적인 실험과 창조정신으로 소재의 물성에 대한 선구자적 연구로 그 표현 영역을 확대했다. 말년에는 그것을 넘어 새로운 빛의 세계를 표현하면서 간결하고 온화한 색조로 확고한 예술관을 보여준다. 오랫동안 고국으로 돌아올 수 없는 일본에서의 생활이었지만 그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한국적 정서는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창작과정에서 자연적으로 표출되었다. 23 곽인식의 작품에 나타나는 물질성의 탐색과 연구는 그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정서와 궁극적으로 그가 나타내고자 했던 물질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본 연구자는 1960년대 이후 곽인식의 작품을 살펴보고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물질성을 분석해 보고자 했다. 1960년대 이전 곽인식의 작품은 추상에서 모노크롬 회화로 어이지고 이전에 나타난 신체적 모티브 대신 마티에르가 보여주는 특성을 강조한다.

1961년부터 그 다음해 그의 작품은 모노크롬 회화 작품과 그 위에 깨진 유리를 결합하는 형식이 나타나면서 매체의 고유성에 의문을 갖는 것과 관련있다. 이후 곽인식은 동판이나 놋쇠, 동이 등 여러 소재를 탐구하면서 물질의 특성을 연속적으로 연구한다. 작품에서는 사물이 본래의 용도를 넘어 ‘깨뜨림’과 ‘배열’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 시기부터 곽인식은 물질의 특성을 작가의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더욱 시각적으로 보여주고자 작품 소재에 원이라는 형태를 강조한다.

또한 1969년부터 타계하는 1988년까지 그의 작품에서 자연과 예술이 어떻게 표현되고 그것이 어떻게 화려한 추상화까지 이어지는지를 알아보았다. 모노하와 같은 동시대의 예술적 담론이 자연과 예술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자신의 이전 작품을 재해석함으로써 자신의 예술세계를 다져 나갔다.

곽인식은 금속, 유리, 돌, 종이 등의 물질이 단순히 자신에 작품 소재를 넘어 인간의 생활 속에 가장 충실하고 친근감 있는 물체라고 생각했다. 그가 작품에 사용한 소재들은 경험을 통한 친숙한 물체로서 인간의 삶과 분리해서 생각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는 이러한 인간의 삶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사물들의 언어에 귀 기울였고 결국 그의 작품 활동은 사물의 본질에 바탕을 둔 본질적인 언어를 들으려 한 결과물이다.

한국, 일본 양국의 미술계는 복잡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깊이 교류하였다. 그러나 곽인식은 어느 쪽의 흐름에도 치우치지 않고 개척자적 예술가로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연구와 실험을 통해 선구적인 예술 활동을 이어갔다. 이를 통해 평면뿐만 아니라 입체와 오브제 등 다양한 예술적 방법을 시도했다. 그의 본질은 이러한 실험정신일 것이다.

곽인식은 수많은 실험과 연구, 창작 활동을 통해 사물의 물성에 대한 선구적이고 개척적인 탐구로 그 예술 세계를 확장했다. 그로인해 말년에는 그것을 초극한 빛의 경지에 다다르며 온화한 색조로 깊고 간결한 예술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 세계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는 것은 작품이 일반적이지 못하고 그 내용이 비교적 난해하다는 점과 결부된다. 또한 그의 미술사적 위상이 한국 미술의 흐름에서 보다 전후 일본 미술 속에 차지하는 부분이 더욱 크다는 사실에서도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한국, 일본 양국 간에 모노하의 흐름이 대두되면서 모노하의 작가들이 주목받고 있다. 또한 1970년대 일본 미술의 큰 흐름인 모노하와의 관계에서 그가 선구적인 존재라는 사실이 조명되면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단기적인 국내 활동으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 곽인식의 연구를 통해 한국 미술사에 다양한 흐름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연구가 의미를 가질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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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rry Harootunian, Japan’s Postwar and After, 1945-1989: An Overview, in eds Doryun Chong et al., From Postwar to Postmodern, Art in Japan 1945-1989: Primary Documents, New York: The Museum of Modern Art, 2012
․ Midori Matsui, Beyond Mondernism: The Return of Painting, in eds Doryun Chonget al., op. cit., New York: The Museum of Modern Art, 2012
․ Thomas G. McCullough, Recent International Forms in Art, The 1976 Biennale of Sydney: Recent International Forms in Art, Sydney: The 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exh. cat.), 1976

[Abstract] A Study on the Materials Appeared in Quac In Sik’s Works Since 1960
 

Quac In Sik has lived a life of solitude with pain and sorrow in the unfortunate history and situation of national division. He was born in Korea, studied in Japan for the art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and was forced to stay there and lived a life of strangers. He walked the path of a pioneer who built his own world as a Japanese resident in Japan for a long time. His experimental and avant – garde works and research activities had a great influence on postwar Japan art.

From the perspective of art history, Quac In Sik can be grasped from two points of view. First, he studied the materiality of objects or the relationship between objects before Monoha of Japan. He has also had a considerable influence on the writers of both Korea and Japan. Secondly, Quac In Sik’s work goes through various changes. From the 1930s to the 1980s, his works have undergone various transformations such as surrealism, informalism, and monochrome, as well as globalization and abstraction. His work has a consistent character and research tendency, even in such a variety of works.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present various trends in Korean art history through the study of materiality in Quac In Sik which has not been properly evaluated by domestic activities in the short term. It was based on materials such as the records of Quac In Sik writer as a research method. In Chapter 2, I divided the characteristics of Quac In Sik into two periods since the 1960s. In the first period, from 1961 to 1968, the artist deviated from the planar monochrome paintings in the time of the times and explored the characteristics of materials such as stone, wood, glass, clay, and iron plate, and continued the work of the unique structure.

The second period is from 1969 until 1988 when the writer died. Through the various experimental works, while discovering the materiality of the material, he finds a familiar material called paper. Quac In Sik uses thin, translucent paper, paper, to study the existential value and depth of matter in planar canvas, unlike before. In this paper, I studied material properties that appeared through the works of Quac In Sik.

Quac In Sik expanded his art world with pioneering and pioneering exploration of the physical properties of objects through numerous experiments, research, and creative activities. At the end, he showed a profound and concise art scene. However, the fact that his work world is not widely known to the public is associated with the fact that the works are not common and their contents are relatively difficult. It is also true that his artistic position is much larger in postwar Japan art than in the flow of Korean art. This study will be meaningful in that it can present various trends in Korean art history through the study of Quac In Sik which has not been properly evaluated by short-term domestic activ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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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1.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 미술평론경영 전공 석사3기
  2.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까지 일본에 나타난 미술 경향이다. 모노(もの)는 일본어로 ‘물(物)’, 즉 물체, 물건을 뜻한다.
  3. 大谷省吾 〈地平線の夢〉 《昭和10年代の幻想絵画展カタログ》 pp.20-22. 東京国立近代美術館. 2003
  4. 김미경 《모노하의 길에서 만난 이우환》 p.28. 공간사. 2006
  5. ミシェル・タピエ 〈具体派礼讃〉 《具体》8号. p.326. 具体美術協会. 1957
  6. Harry Harootunian, Japan’s Postwar and After, 1945-1989: An Overview, in eds Doryun Chong et al., From Postwar to Postmodern, Art in Japan 1945-1989: Primary Documents, p. 19, New York: The Museum of Modern Art, 2012
  7. 植村鷹千代 〈画廊から〉 《みづゑ》No.693. pp.77-79. 美術出版社. 1962
  8. 유준상 〈곽인식의『사물에 언어』〉 《미술세계》2월. p.31. 1991
  9. 李禹煥·中原佑介 〈トリックス·アンド·ヴィヅョン展と石子順造のこと〉 《石子順造とその仲間たち 対談集》 pp.70-71. 静岡: 虹の美術館. 2002
  10. Midori Matsui, Beyond Mondernism: The Return of Painting, in eds Doryun Chong et al., op. cit., pp.306-307, New York: The Museum of Modern Art, 2012
  11. Thomas G. McCullough, Recent International Forms in Art, The 1976 Biennale of Sydney: Recent International Forms in Art, p.77, Sydney: The 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exh. cat.), 1976
  12. 이성경 〈예술가 곽인식〉 《한일현대미술 50년의 초석 곽인식의 세계》 p.7. 광주시립미술관. 2002
  13. 정준모 〈표리(表裏)와 그 사이(間)〉 《모노(物)와 빛의 작가 곽인식 QUAC INSIK》 pp.13-14. 가나아트센터. 2001
  14. 谷新 〈巧まざるものとのあいだで〉 《한일현대미술 50년의 초석 곽인식의 세계》 p.16. 광주시립미술관. 2002
  15. 정준모 〈표리(表裏)와 그 사이(間)〉 《모노(物)와 빛의 작가 곽인식 QUAC INSIK》 pp.13-14. 가나아트센터. 2001
  16. 이성경 〈예술가 곽인식〉 《한일현대미술 50년의 초석 곽인식의 세계》 p.8. 광주시립미술관. 2002
  17. 郭仁植, 〈生活, その素材〉 《美術手帖》 pp.177-179. 美術出版社. 1976
  18. 정준모 〈표리(表裏)와 그 사이(間)〉 《모노(物)와 빛의 작가 곽인식 QUAC INSIK》 pp.10-12. 가나아트센터. 2001
  19. 吉原治良 〈具体美術宣言〉 《芸術新潮》12月号. p.202. 新潮社. 1956
  20. 정준모 〈표리(表裏)와 그 사이(間)〉 《모노(物)와 빛의 작가 곽인식 QUAC INSIK》 pp.10-12. 가나아트센터. 2001
  21. 室伏哲郎 〈郭仁植アトリエインタビュー「もの派事始め」〉 《版画芸術》 No.48. p.127. 阿部出版. 1985
  22. 오광수 〈투명한 의식 곽인식의 예술세계〉 《곽인식展》 p.6. ATELIER 705. 2009
  23. 김종주 〈끝없는 예술의 향기 곽인식의 세계와 함께〉 《한일현대미술 50년의 초석 곽인식의 세계》 p.23. 광주시립미술관.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