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 변관식(1899-1976) 산수화의 주요 기법과 조형적 특징 연구

제10호 《Art Pavilion》수록. 2019년 11월 발행
 
김혜준 1
 
1. 머리말
2. 소정 변관식 산수화의 형성배경
3. 소정 변관식 산수화의 주요 기법과 조형적 특징

    1) 적묵법과 파선법
    2) 동적 구도와 형태 변형
    3) 점경인물
    4) 다시점

4. 미술사적 평가와 의미
5. 맺음말
 
 

1. 머리말

 

적묵법(積墨法)과 파선법(破線法)으로 이루어진 소정(小亭) 변관식(卞寬植, 1899-1976)의 주요 기법과 조형적 특징은 이후 소정양식으로 불리며 한국적 풍류와 산천을 특징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평가된다. 변관식은 사생을 바탕으로 한 현실적 시각과 작가 고유의 기법을 통해 한국의 산천을 묘사하였으며, 특히 금강산을 소재로 다수의 작품 활동을 하였다.

변관식 작품의 조형적 특징은 특히 1950년대 이후의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작가는 전통 회화를 계승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의 변화를 모색하여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였다. 변관식의 차별화된 조형성은 특히 강한 개성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며, 근대 동양화에서 6대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본 논문의 목적은 소정 변관식 산수화의 형성배경을 통해 변화를 살펴보고, 적묵법과 파선법을 위시한 작가의 주요 기법과 조형적 특징을 도출하는 데 있다. 또한 그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이 양식 형성에 미친 영향과 조형적 특징에 따른 작품을 살펴봄으로써 작가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소정양식의 형성 배경과 작품들을 분석하고 특징을 도출하여 그 가치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연구 방법은 소정 변관식 관련 도록, 단행본, 학술지 논문, 본인이 기고한 신문기사를 참고하였다.

 

2. 소정 변관식 산수화의 형성배경

 

변관식의 산수화는 1950년대 안정되었다는 평가를 받기 전까지 지속적인 변화와 요인이 존재하였다. 2장에서는 소정 변관식의 생애를 위주로 그 변화를 살펴보아 그의 산수화의 형성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변관식은 유년 시절부터 그림을 그렸지만 195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본인만의 기법과 조형적 요소를 통해 양식화하였는데, 그에 이르기까지 일본 유학 시기를 거치고 국전에 대한 고발문을 기고하는 등 시기별로 다양한 경험과 상황에 처했음을 알 수 있다. 작가의 생애는 한국 동양화단의 전개과정의 일면과도 맞물려 있으며, 이 같은 다양한 상황들은 1950년대에 이르러 작가만의 조형적 특징을 가지게 되기까지의 토대이자 배경이 되었다.

변관식은 1899년 황해도 옹진군 에미리 두무동에서 태어나 외조부 소림(小琳) 조석진(趙錫晋, 1853-1920) 2을 따라 상경하여 외가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변관식은 외가에 머무르며 문하생들이 수업 받는 것을 지켜보았다. 보통학교에 편입해 신교육을 받았으나 학과공부보다 그림에 더 관심이 많았으며, 1917년에는 조석진이 안중식과 함께 화과의 지도교수로 있던 서화미술회(書畵美術會) 3에 입학했다. 변관식이 입학할 당시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1897-1972), 심산(心汕) 노수현(盧壽鉉, 1899-1978)이 서화미술회 원생으로 있었다. 변관식은 이들처럼 정식학생으로 입학하진 않았으나, 조석진이 지도교수로 있던 영향으로 다른 원생과 마찬가지로 출입하며 서화지망생들과 교류하며 전통회화 기법을 익혀나갔다. 이렇듯 변관식이 외조부인 조석진 아래에서 유년을 보낸 것은 전통기법 체득의 가장 큰 배경으로 들 수 있다.

1921년 서화협회전(書畫協會展) 4, 1922년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가 개막하면서 변관식은 초기 7회 동안 작품을 해마다 출품했다. 이 무렵의 작품은 안중식과 조석진에게서 유년시절부터 전수받은 전통적인 기법을 중심으로 산수화를 그려냈지만 동시에 다른 화풍을 시도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구체적인 활동으로는 1923년 청전 이상범, 심산 노수현 등과 함께 동연사(同硏社)를 조직한 것을 들 수 있다. 비록 동연사는 전시를 갖기 전에 해체되었지만, 결성일부터 약 20 일 후에 열린 제3회 서화협회전 출품작 「어느 골목」에서 이들이 추구한 화풍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시도는 당시 자기 양식의 확립과 당대 화단의 새로운 방향에 대한 모색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동년배의 화가들이 함께 그룹을 조직하여 전통을 기초로 한 새로운 화풍과 독창적인 시도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이후의 방향성을 추측할 수 있다.

이후 1925년 변관식은 당시 세력가이자 서화협회 명예회원이었던 이용문(李容文)의 후원으로 일본 유학을 떠나게 된다. 특징적인 것은 다른 이들처럼 정규 수업을 수강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수묵화가 고무로 스이운(小室翠雲, 1874-1945) 5의 문하로 들어가 4년간 사사받게 된다. 또한 동경 우에노 미술학교(上野美術學校)에 청강생으로 들어가 연구시기를 보냈다. 이러한 일본 유학시기에 변관식은 풍경 묘사에서 필선을 사용하지 않는 당시 일본수묵화 기법을 학습하였으며, 표현주의적 요소와 사실주의적 요소를 절충하려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일본에 유입된 외국 작품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었다.

이 시기의 영향은 이후 변관식이 특징적으로 사용하는 화법이나 특성에 직접적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변관식이 서양기법과 새로운 양식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변관식의 일본 유학 시기 스승이었던 고무로 스이운은 중국의 남종화를 일본적으로 해석한 양식에 부분적으로 서양화법을 흡수하여 형성된 화법을 구사하였는데, 192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까지의 변관식 작품에서 전반적으로 그의 문하에서 습득한 것을 접목하거나 1929년 귀국 후에는 중국의 화법에 관심을 갖는 등 변화를 보인 것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1930년대에 제작된 「산수경(山水景)」과 「산수하경(山水夏景)」에서 각각 중국의 석도(石濤, 1642-1707)와 미불(米芾, 1051년-1107)의 화풍을 통해 산의 수목을 옆으로 눕힌 붓몸으로 찍는 미점(米點)을 익히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6 그러나 1950년대부터는 이 시기와 상관없이 본인만의 양식을 수립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으로 볼 때 일본 유학 시기는 화풍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시기는 아니다. 새로운 양식과 기법을 경험하고 학습할 수 있었던, 체험적인 의미가 강한 배경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귀국 직후에는 광주에 내려가 약 4년간 거주하며,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1891-1977)을 만나 전라도에서의 남종화부흥운동을 주장하고 연진회(鍊眞會)의 찬조회원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이후 1937년부터는 수시로 금강산을 비롯한 명산을 탐승하러 다니기 시작한다. 이 시기는 당시의 변관식에게는 사실상 유람에 가까웠지만, 이는 이후 사생미가 완연한 산수화가 태동하는 계기가 된 동시에, 1950년대부터 이루어진 변관식 특유의 화풍을 정립하는 데 있어서 배경이 되는 등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소정 후기의 태반의 작품들이 금강산을 모델로 한 것이란 사실은 그의 금강산 체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나를 반증해주고 있다. 7

1939년부터 해방을 기점으로 하여 1945년 조선미술건설본부(朝鮮美術建設本部)가 창설되며 동양화부 위원이 되고, 1949년에는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大韓民國美術展覽會, 약칭 국전)의 심사위원으로 선정되는 등 화단과의 관계를 새로 정립하면서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러나 당시 국전의 심사와 관련하여 비판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 과정에서 민족회화의 진로에 대한 일종의 작가적 사명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명감의 발로는 1954년부터 몇 년에 걸쳐 국전에 대한 고발문을 신문에 기고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오는 11월 1일부터 한 달 동안 제4회 국전이 열리게 되었는데 그에 앞서 문교부에서는 지난 23일 각부를 통한 심사위원들을 결정 발표하였다. 그 심사위원 선정에 공정성을 잃고 편파적인 경향이 이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어찌된 까닭인가. … 심사 개시 일을 하루 앞둔 23일에 발표했다는 것은 그 어떤 정치적인 음모가 잠재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 우리는 어디까지나 애국적이고 국제 수준에 달한 화단을 육성하자는 의미에서 전 화가들이 강력하게 단결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것이며 내가 심사원 문제를 거론하는 소이도 결국엔 ‘분열에서 단결’로 지향하고 매진하자는 의미에서임은 두말 할 것도 없다.” 8

 

1955년 10월 28일 동아일보에 게재한 작가의 선언은 한국현대미술사에서 의미를 지니는 일대사건이었다. 1954년 11월 21일 동아일보에 국전 동양화부 심사위원 구성에 대한 비공정성과 추천작가 9의 대우에 대해 이야기 한 뒤 두 번째 선언이다. 변관식은 이에 그치지 않고 2년 뒤인 1957년 연합신문에 한차례 더 고발문을 발표하게 된다.

 

    “금 6회 국전을 열고 보니 그 불공정하고 부패한 양상이 더욱 노골화하여 이러다가는 동양화단의 장래가 크게 근심이 되어 원래부터 가졌던 국전에 대한 소감의 일단을 이 자리에서 발표하여 보고자 하는 바이다. …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제 1회 때부터 금 6회까지 일인도 빠짐없이 매년 고정된 작가들이 심사원에 나간 까닭이다. 그들은 매년 가을의 이 국전 때가 되면 서로 어느 집단적 세력을 형성하여 … 해가 지남에 따라 자기파들만의 국전을 되풀이하여 점점 사회와 작가들의 비난과 원성을 사기에 이르렀다.” 10

 

일련의 사건은 작가 자신의 작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자각과 작품에 있어서도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비리에 대한 고발문으로 인한 사명감과 고유성, 독특성을 강조하게 되는 발로가 된 것이다. 이는 1920년대부터 한국화의 독창적인 표현방법에 대한 고민할 만큼 한국화가로서의 사명감을 가졌던 것과 주변에서 반골이라 일컫는 성품이 더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1950년대부터 변관식의 화법은 적묵법과 파선법을 필두로 안정되었으며 금강산을 주요 소재로 삼기 시작했는데, 이처럼 금강산에 애착을 갖게 된 것은 이 시기와도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 금강산 작품은 「외금강삼선암추색(外金剛三仙巖秋色)」에서 시작되어 「내금강진주담(內金剛眞珠潭)」, 「외금강구룡춘색(外金剛九龍春色)」, 그리고 「외금강옥류천(外金剛玉流川)」으로 이어진다. 정형산수는 1957년 작 「진양성외(晋陽城外)」,「호반풍월(湖畔風月)」 등이 있다.

이 시기의 작품은 특히 과거 사생체험의 영향으로 더욱 현장감이 들며, 적묵법과 파선법으로 이루어진 작가의 독창적인 필치나 동적인 구도가 금강산과 어우러져 한국산천의 건조한 분위기와 토양감을 보여주게 된다. 변관식의 독창적인 필묵법, 예컨대 ‘소정양식’으로 불리는 적묵법과 파선법, 갈필 등이 확연히 두드러지게 된 것도 이 시기다.

 

3. 소정 변관식 산수화의 주요기법과 조형적 특징

 

1970년대는 정치적인 이유로 정부가 전국적으로 민족주의와 한국주의를 고취함에 따라 한국과 관련된 학문이 진흥되고 한국화 붐이 일어났다. 미술사에서도 조선 후기의 진경산수화와 같은 한국적 특성을 찾아 주목하기 시작한 때였다. 이러한 시대 분위기에서 변관식은 ‘고희기념전’과 ‘동양화6대가전’, ‘현대화랑 초대전’, ‘동아일보사 회고전’ 등을 통해 비로소 주목받기 시작했다. 11

변관식이 이와 같이 근대미술사의 거목으로 평가를 받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조선 후기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전통을 계승하면서, 한국 산수의 아름다움과 특질을 한국의 정서에 기초한 형식으로 재창조해냈기 때문이다. 특히 작가가 금강산 그림을 통해 보인 역동적 구도와 화법은 ‘소정양식’의 전형으로 강조되었으며, 한국 산천의 현장감을 특징적으로 잘 묘사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러한 변관식의 창작세계의 특징은 근대기 민족미술에 대한 작가의 발로이면서, 작가의 차별화된 조형적 가치가 강한 개성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더욱 각광을 받았던 것이다.

변관식 작품의 가치는 1970년대부터 그의 타계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되었고, 같은 서화미술회 출신인 청전 이상범과 함께 근대 전통화의 대표적인 존재이며 상반된 특질의 두 전형으로 최상의 미술사적 평가를 얻게 된다. 3장에서는 이러한 작가 고유의 조형적 특징을 네 가지로 도출해 분석하고자 한다. 더불어 각 특징에 해당하는 작품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1) 적묵법과 파선법

 

변관식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필묵 기법은 적묵법과 파선법을 기초로 하는 건조한 묵의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적묵법은 대표적인 용묵법(用墨法)의 하나로서 담묵(淡墨)에서 농묵에 이르는 묵의 사용을 계속적으로 번복하면서 쌓여지는 묵의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이 같은 용묵의 성격은 제한된 작가들에 의한 한정적인 기법상의 효과가 아니어서 수묵을 다루는 대다수의 작가들이 다양한 형태로 체험하거나 시도하게 된다. 하지만 이 적묵의 방법이나 과정은 그 모두가 독특한 표현감각과 효과가 극도의 민감한 특성을 수반하기 때문에 굉장히 여러 유형의 적묵법이 형성되어 왔다. 12 특히 변관식의 적묵은 연속적인 묵적과 흑갈의 담채로 작품세계를 전개하였다.

적묵법, 파선법, 갈필(渴筆)의 효과로 인한 먹의 쌓임을 통한 농담과 여백은 강한 대조감을 이룬다. 이 세 가지는 화면의 극적 구성을 조형하는 소정양식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특히 산수화에서 자주 나타나는 나무, 암석, 토양 등의 입체감과 재질감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내 그림의 기법? 적묵법과 파선법이지. 먹을 엷게 찍어 그림의 윤곽을 만들고 다시 또 엷게 그 위에 먹을 칠하지. 이게 적묵법이야. 그러나 이대로 두면 선이 속되져. 여기에 진한 묵을 묻혀 그 선 위에 점을 튀겨 선을 깨뜨리지. 이게 독특한 내 파선법이야.” 13

 

작가 스스로가 언급했듯이 적묵법과 파선법은 먹의 중첩과 파선으로 이루어진다. 변관식의 적묵법은 먹이 쌓이는 효과를 통해 부분적인 암산이나 경관의 입체적인 요소를 강조해 주며, 특히 흑백의 대조를 통해 한층 더 대비감을 높이고 동시에 분방한 동선을 준다. 이는 화면에 과하지 않은 율동감을 부여한다는 장점이 있다. 작가는 적묵의 입체적인 효과 위에 적절한 변화를 주기 위해 이 선 위에 군데군데 태점(苔點)을 가하는데, 작가는 이를 그어진 선의 속기를 파괴한다는 의미에서 파선법으로 명명한다. 14 이 같은 먹을 통한 선과 점의 적절한 대응 관계가 소정 양식 필묵의 기조라 볼 수 있다.

또한 작가는 갈필을 구사하여 세련됨보다는 메마르고 텁텁한 토양을 묘사한다. 이구열은 변관식의 습필보다 갈필을 즐겨 구사했으며, 이러한 필법은 세련성이 없어 보이지만 오히려 본인만의 특이한 형상미를 창출한다고 하였다. 15 특히 이 필체는 금강산이라는 소재와 잘 어울리는데, 세부적인 치밀함과 역동적인 구도가 금강산의 향토성과 토양감을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의 반도적 기후와 문화적 특질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1923년 작인 「추경산수(秋景山水)」는 잎이 떨어진 나무와 근경의 흙 부분에 짙게 스며든 먹이 전반적인 갈색과 어우러져 추경의 느낌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특히 바위의 표현에 있어서 먹과 선을 여러 번 겹쳐서 칠한 표현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이후 변관식의 주 표현인 적묵법과 파선법의 초기형태를 보여준다.

「석문산천(石門山川)」은 1954년에 출품되어 이 무렵 그려졌을 것으로 여겨지는 작품이다. 금강산의 특정 실경은 아니지만 기묘한 모습의 바위들과 각진 암산의 필묵 표현이 금강산의 어느 실경을 재구성하여 그린 것으로 보인다. 군데군데 가해진 적묵법과 절제된 파선법이 특히 눈에 띄며, 강한 윤곽선으로 박진감 있으면서도 딱딱한 암벽의 질감을 잘 표현하였다.

1965년 이후에는 적묵법과 파선법을 주로 이용하는 그의 형식적 특징의 골격은 그대로 두면서 굵은 태점이 더욱 첨가되기 시작하였다. 1966년에 그린「외금강삼선암추색(外金剛三仙巖秋色)」을 1959년 작과 비교하면 태점의 특징과 효과가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1960년대 후반 작인 「내금강진주담(內金剛珍珠潭)」에서는 직각으로 꺾이는 진주담 바위에서 볼 수 있는 이전의 단단하고 날카로운 질감묘사와는 달리 물기 많은 붓으로 두텁게 쌓아 올린 적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부드러우면서도 적묵법 특유의 텁텁한 토양의 느낌을 표현해낸다. 1976년의 「내금강진주담(內金剛珍珠潭)」에서는 조금 더 파선이 두드러져있음을 알 수 있는데, 죽음을 한 달 여 앞두고 제작한 이 「내금강진주담」은 정방형의 화면에 진주담 계곡을 전면에 배치하여 폭포의 관경을 강하게 부각한다. 점들이 모여 나무와 골산의 형태를 이룰 정도로 많은 호초점(胡椒點) 16과 태점(苔點)들이 산재해 있으며, 삼선암(三仙岩) 봉우리와 진주담(珍珠潭) 계곡에서는 적묵과 파선으로 강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1985년 ‘청전과 소정전’에서 처음 공개되었고, 강한 대비로 1960년대 작으로 추정되는「금강산구룡폭(金剛山九龍瀑)」은 화면상 초점이 구룡폭포에 놓여 있지만, 각이 진 바위의 주름 표현에서 조형성을 느낄 수 있다. 갈색의 담채와 적묵법과 파선법으로 이루어진 암벽주름과 윤곽선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외금강삼선암추색(外金剛三仙巖秋色)」에서는 농담을 달리하는 먹을 겹쳐 그으며 쌓아올린 적묵법과 먹이 뭉쳐진 부분에 다시 진한 선을 긋고 점을 찍어서 깨는 파선법이 나타난다. 특히 각진 암석의 입체감을 높이기 위해 표면을 수직과 수평선이 교차되도록 반복적으로 그어냈다. 이는 마치 큐비즘의 입방체를 연상시키는 조형효과와 더불어 동세와 입체감, 괴적감(怪寂感)을 느낄 수 있다. 17 이 같은 작가의 필치는 대상의 입체감과 형태감, 재질감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2) 동적 구도와 형태 변형

 

금강산을 주제로 한 변관식의 작품들은 다수가 중첩이 심하고, 요철이 풍부한 암벽과 계곡으로 긴장을 유도하는 구도감을 가지고 있다. 18 또한 화면 속 자연이 전면적으로 작가의 해석과 의도에 따라 재구성된다. 19 자연의 원(原) 형태를 작가가 변형하고 공간을 재구성한다는 것은 자연 공간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적극적임을 반영한다. 변관식의 조형적 특징에서 이러한 측면은 크기의 강조, 사선 형태, 자연의 구조적 구축 등으로 자주 나타나며, 이는 구도에서 긴장감과 동적인 측면을 부각시킨다. 크기의 강조는 주제를 확대하거나 화면 내에서 원근에 따라 크기를 확연히 대비하는 등으로 나타낼 수 있으며, 사선 형태는 하나의 필치가 사선의 형태를 띠는 경우와 공간구획이나 화면구성에서 사선이 도드라져 보이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자연의 구조적 구축으로는 원 형태의 변형이나 구성의 배치가 이에 해당한다.

소정의 작품 「내금강보덕굴(內金剛普德窟)」에서는 주제 형태인 보덕굴(普德窟)을 일부러 가까이 강조하여 화면 내에서 강하게 부각시킨 것을 알 수 있다. 동시에 화면 앞쪽에서는 거대한 나무들이 갑자기 솟아올라있는데, 이는 화면 내에서 시각적인 충격을 주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화면 전후에 해당하는 소나무의 굵기와 길이의 비율에 있어서 작가가 형태나 크기에 의도를 넣어 일부러 변형을 가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확연한 거리감과 함께 동적인 요소를 부각시킨다.

「석문산천(石門山川)」은 구성에 있어서 폭포와 주변의 암벽을 일부러 가깝게 잡아 실경을 박진감 있게 잡아내었다. 이것은 조형적 특징에서 크기의 강조를 의도한 것에 해당한다. 또한 1955년 작인 「해금강총석정(海金剛叢石亭)」에서는 화면 한 복판에 거대한 일주암(一柱巖)을 그려 넣고 그 밑을 여러 겹으로 포개져 있는 암석들로 구성해놓았는데, 여기에서는 화면구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작가가 과장 및 변형시켰음을 느끼게 된다. 「외금강삼선암추색」에서는 형태에 대한 크기 강조와 더불어 자연의 구조적 구축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 동시에 보인다. 작품 좌측에 크게 구성된 암봉(岩峯)을 설정하여 긴장감을 주었는데 이는 크기 변형과 동시에 구조적 구축에 해당한다. 또한, 이 암봉을 밑에서 바라보는 앙시(仰視)로 그려내면서도 화면에서 수직으로 날카롭게 치솟게 그려내는 구성을 통해 긴장감을 주었다. 그리고 오른쪽에서는 점점 풀어내면서 뒤틀려 솟아오른 암산을 배치해 이러한 구도적 긴장감을 주었다.

「산간유수(山澗流水)」는 횡으로 긴 화폭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의 암산이 잘리면서 좌우로 중경과 원경이 화면을 꽉 채우고 있으며, 중간부에서 골짜기마다 떨어지는 폭포와 뻗어나간 소나무들을 다각도로 집중적으로 포치하여 수평과 수직의 대비, 덩어리 감과 선적인 요소의 대조를 이룬다. 이는 화면에 긴장감을 지속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왼쪽 하단부터 소나무를 따라 오른쪽 상단으로 대각선을 그리게 된다. 이는 작가의 의도적인 구조적 변형을 통해 유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1970년대 전반 작품인「내금강보덕굴추색(內金剛普德窟秋色)」에서도 이 같은 형태의 변형을 확인할 수 있다. 「내금강보덕굴추색」에서는 일반적인 보덕굴 그림과는 달리 화면 중앙에 보덕굴을 설정하고, 이 암자를 중심으로 분설담(濆雪潭)과 보덕굴(普德窟)로 오르는 길이 커다란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보덕굴 양쪽으로 솟아오른 두 그루의 소나무들이 이 타원형의 동세와 대조를 이루는 독특한 구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자연형태의 변형과 왜곡에 의한 재구성이 두드러진다.


 
 
 
 
 
 
 
 
 

3) 점경인물

 

변관식의 산수화에는 개성적인 필치로 묘사된, 거대한 크기로 설정된 산과 대비되는 작은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점경인물(點景人物)들은 머리에 갓을 쓰고 노란색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으로 추정되는 남자 형태가 가장 많이 나타나며, 이외에도 농부와 어부, 일을 하는 여인들도 종종 발견된다. 이들은 소정 작품을 통해 금강산 여행을 떠나는 감상자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동시에 시선을 유도함으로써 동적인 요소를 부각시켜준다.

수화의 점경인물이란 대개 동양의 산수화에 자주 등장하는 그림 속 인물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간단하고 작게 묘사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절경을 여행하며 자연을 유랑하고 즐기는 친자연적 존재나 고사(故事)의 주인공 등을 자주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인물표현은 산수화에서 전통적으로 나타나는 요소이지만, 변관식의 경우 1950년대를 기점으로 노란색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을 반복해서 그려냄으로써 그의 독특한 산수 표현에 생동감을 불어 넣어주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나아가 이전의 점경인물들과 달리 구체성과 현실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고도 평해진다. 점경인물은 전체화면에서 차지하는 크기는 미미하나 상징적 내용과 시각적 효과가 작가의 그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 또한 충분히 중요한 조형적 요소 중 하나로 들 수 있다.

변관식의 산수화에 등장하는 점경인물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길을 걷고 있는 ‘노인’들이다. 뒤쪽 측면에서 바라본 모습이 대부분으로, 머리에는 커다란 갓을 쓰고 노란색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으며 품이 넓은 바지저고리를 입고 있다. 이목구비는 자세히 그려져 있지 않으나 구부정한 허리와 지팡이를 짚는 등의 특징으로 나이 든 노인임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비교적 말년인 1961년「송하문동자(松下問童子)」에서 나타난 점경인물은 크고 상세하게 노란 두루마기의 노인을 그려내어 다른 작품들의 점경인물에서 나타내고자 했던 바를 확인할 수 있다. 간혹 두루마기를 푸른색이나 회색으로 칠하거나 그냥 흰색의 여백으로 남겨 놓는 경우도 있지만 작품이 말년으로 갈수록 노란색 두루마기를 입고 있는 것이 가장 많다. 또한 대부분 서너 명에서 많게는 대여섯 명이 어울려 일행을 이루면서 길을 가고 있는 형상이다. 그리는 기법에서는 옷 주름을 최소화한 감필법(減筆法)을 구사하고 있다.

작가의 점경인물이 나타나는 것으로 연대가 확실한 것은 초기작에 해당하는 1922년 작인 「촉산행려(蜀山行旅)」, 1939년 작인 「강촌유거(江村幽居)」와 「계산춘계(溪山春季)」등이 있다. 이처럼 초기의 작품들에서도 점경인물을 확인할 수 있으나 소정의 작품에서 전형적인 점경인물 노인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초엽으로 볼 수 있다. 20 이로 미루어 보아 금강산을 본격적으로 그린 이후에야 변관식의 개성적인 점경인물 양식이 확립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66년「외금강삼선암추색」에서는 점경인물들의 동선이 부지런히 삼선암 뒤쪽에 자리 잡은 집으로 향한다. 집은 산길을 걸어온 것으로 설정된 노인들의 쉼터이며, 그들이 금강산을 감상하는 장소의 역할을 한다.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하는 인물들은 그림에서 화제를 제공하며 시선의 이동을 유도한다. 노인들은 왼쪽 팔과 다리를 동시에 휘젓는 부자연스러운 모습이지만, 이것 역시 소정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1970년대에 오면 인물들은 화가와 함께 나이 들어 허리가 더 굽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1970년대 전반 작품인 「단발령(斷髮嶺)」에서는 더욱 허리가 굽고 노란색 겉옷이 특징적인 인물을 확연히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강렬한 먹의 색감이 두드러지는 화면의 중심에서 황색의 두루마기를 입고 나란히 혹은 앞서서 걷는 인물들에게서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물들의 동선을 따라 시선이 움직이는 효과를 준다.

화가 스스로 ‘나를 그린 것일지도 모른다.’ 이영열〈소정 변관식의 금강산 그림연구〉《미술사와 문화유산》창간호. p.27. 명지대학교 문화유산연구소. 2012
라고 말했듯이 이 점경인물은 처음에는 방랑벽이 심한 자신의 자화상을 보여주기 위하여 표현했다가 나중에는 한국 산천의 향토색을 더해주고 현장감을 나타내는 인물로 발전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은 자연 친화와 산수풍류의 감흥을 보여주면서 화면 속 감정을 고양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조형적 특징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노인들은 근대적으로 그려진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조선 후기 정선의 실경산수화 속 인물들처럼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인물들이라는 점이 특징인데, 전통 실경산수화의 인물과 같은 역할을 하려는 의도인 듯하다. 이는 금강산이라는 전통 주제를 파격적인 구도와 강렬한 준법으로 근대적인 면모를 보이게 표현하면서도 전통에서 기초함을 보이려는 움직임으로 추측할 수 있다.

 

4) 다시점

 

다시점(多視點)은 변관식의 작품 내에서 공간의 재구성을 유도하고 화면 내 긴장감을 준다. 이는 동양회화에 나타나는 주요 특징 중 하나로, 물상의 내외적인 투시는 물론 좌우상하 관점에서의 투시를 통해 진정한 관념적 회화를 창출한다. 21 다양한 시각의 변화는 공간을 재구성하여 관람자의 시점에서 현장감과 긴장감, 변화감을 주는데 주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동양회화에서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지만, 소정의 경우 동적인 구도, 형태변형과 함께 사용하여 시각적으로 더욱 극대화되었다.

예컨대 1959년 작 「외금강삼선암추색(外金剛三仙巖秋色)」은 소정의 대표적인 다시점 작품이다. 화면에 수직으로 솟은 암봉을 밑에서 올려다 본 앙시로, 계곡물이 급하게 흘러내리는 삼선암 골짜기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시(俯瞰視)로 시점을 잡아 화면에 강한 역동감과 긴장감을 조성한다. 작가는 작품 좌측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암봉(岩峯)을 설정하여 배치하였는데, 이는 크기 변형과 동시에 구조적 구축에 해당한다. 크게 재구성한 암봉을 밑에서 바라보는 앙시(仰視)로 그려내어 더 효과적으로 크기의 대비감을 나타내고 긴장감을 주었다.

소정의 「강나루풍경」의 경우는 좀 더 복잡한 양상으로 시각의 방향성이 파괴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화면 오른쪽으로 난 비탈길 쪽에서 바라보는 시점과 강 위에 배를 띄우고 이 풍경을 약간 올려다보는 시점이 화면 속에 혼재한다. 또한 풍경 속에 넓게 늘어지는 담벽과 길, 집들은 하나같이 하나의 시점에서 바라본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시점에서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집, 담, 나무 등 모든 경물이 완전히 드러나게 경관을 조성하여 시점에서의 폐쇄성을 처음부터 배제하고 있다. 22 즉, 완전히 물체의 형태를 드러내 놓음으로써 그것이 지닌 구조와 시점의 변형이 쉽게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경물의 배치로 시각의 일방향성이 파괴되고, 이로 인해 자유로운 변화와 율동감, 긴장감이 형성된다.

「산가(山家)」는 산과 나무, 집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마치 하나로 녹아드는 듯한 독특한 구성이다. 이는 관객이 작품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듯 현장감을 준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과 전경의 웅덩이는 부감시로 표현되어 있는 것에 반해 그 옆의 두 채의 기와집과 산은 앙시로 묘사되어 서로 불균형을 이루며 긴장감을 자아낸다. 하나의 화면 안에 여러 시점이 공존하면서 역동감을 부여하는 구성이다.

「보덕굴춘색(普德窟春色)」은 화면 인물을 중심으로 위쪽은 앙시, 아래쪽은 부감시로 처리되어있다. 이러한 화면은 화면 안에서 어떤 대상을 바라봄과 동시에 화면 밖에서 화면 안을 보는 두 개의 시점을 한 화면 속에 끌어들여 가능해진다. 23 이 같은 다시점을 공존시킴으로써 한 화면 내에서 3차원성과 현장감을 강조한다.

변관식의 경우 앙시나 부감시를 한 화면에 교차해서 적용하고 시각을 자유롭게 설정한다. 이는 자연의 전체를 담는 관념적 이상향의 경관이라기보다는 실제 산수를 사생하고 있는 듯한 현장감을 주는 것으로, 작가의 조형 의지와 특성과 더욱 관련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화면 내 시점의 자유로운 조정은 긴장감을 부여한다. 이는 곧 사생감과 현실감을 준다. 상당히 산발적이기 때문에 변화감을 동시에 주고, 시각의 방향에 따라 이동하게 하는 조형적 특징이 된다.

 

4. 미술사적 평가와 의미

 

변관식은 1950년대 역사적 전환기와 더불어 민족미술로서의 지향을 더욱 고민하였고, 이는 이후 ‘소정양식’으로 불리게 되는 조형적 성과를 이루었다. 이 시기에 작가 본인도 〈미술의 한국적 독특성〉에서 능동적, 독창적인 ‘한국적인 독특성’을 강조한다.

 

    “우리는 피동적이 되지 말고 능동적이 되어야 하겠으며, 모방적이 되지 말고 독창적이 되고, 공상적이 되지 말고 현실적이어야만 되겠다. 중국의 산수나 풍속을 아무리 훌륭하게 그려봤자 우리네에겐 실감을 주는 것이 없을 것이니…특히 우리 미술인들은 하나의 ‘한국적인 독특성’을 창조 발휘하는 데에 힘써야 되겠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24

 

겸재 정선의 미적 가치를 그토록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어쩌면 중국의 그 거대한 문화유산의 무게에서 한국적 자연을 바탕으로 한 회화세계를 구현하려 했다는 이유에서 그렇다. 25 한국 산천을 바탕으로 한국적인 독특성을 띠고자 한 변관식의 작품은 정선과 비슷한 맥락에서 평가받을 수 있다. 고암(顧庵) 이응노(李應魯, 1904-1989)는 변관식에 대해 ‘고전을 준수하면서도 새로운 구도를 그린 데에서 시대성을 엿볼 수 있으며, 민족성을 살리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려는 표현이 완연하다’ 26고 평가하였다.

이후 변관식의 작품에 대해 그의 지향점과 예술세계에 대한 본격적인 사회적 평가와 재인식이 이루어지는데, 그 시발점은 1971년 서울신문사가 기획한 ‘동양화6대가전’ 이 전시의 동양화 6대가는 허백련, 김은호, 박승무, 이상범, 노수현, 변관식이다. 이 전시는 ‘6대가’라는 개념의 본격적인 계기가 되어서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 집체적인 명명에 대해서는 이후 거의 일반적인 개념으로 통칭되면서 근대 동양화의 종언자들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27과 1976년 작고하기 직전 동아일보사가 개최한 변관식 회고전을 통해서였다.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 민족주의와 한국주의를 고취함에 따라 한국학진흥책 등에 수반되어 한국화가 주목받고 있었다. 미술사에서도 조선후기 진경산수화와 같은 한국적 특수성이 부각되던 때였다. 이 시기 이후 소정 변관식은 본격적으로 근대미술에서 한국적 정서에 밑받침된 한국산수의 독창성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단색을 사용하고 있지만, 화면의 네모꼴의 색들은 하나의 색으로만 규정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흰색이라 할지라도 화면을 구성하는 네모꼴들의 형태, 크기, 쌓인 물감의 횟수나 양의 차이로 다른 높낮이를 갖고 있기에 같은 흰색을 사용한 작품일지라도 현저히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 그리고 그는 단색을 사용하지만 하나의 색에서도 다양한 톤을 내기 위해 여러 제조사의 같은 색 물감을 사용하기도 한다.

특히 작가의 적묵과 파선으로 이루어진 주요 기법과 동적인 구도는 한국적 풍류의 산천을 특징적으로 잘 묘사한 것으로 평가된다. 적묵법은 특정 작가에게만 한정적인기법은 아니지만 민감한 특성을 수반하기 때문에 굉장히 여러 유형의 적묵법이 형성된다. 특히 소정이 구사하는 적묵은 파선과 갈필, 태점과 단묘 등을 이용하여 토양감을 주는 묘사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다. 이러한 변관식의 창작세계의 특징은 근대기 민족미술에 대한 작가의 발로이면서, 작가의 차별화된 조형성에서 인정을 받았다. 소정은 생애 전반적으로 비관변작가로 활동해 왔는데, 이러한 반골기질과 역사적 전환점이 맞물려 보다 능동적으로 한국의 산수를 묘사했다고 여겨진다. 소정이 1950년대 이후 강조했던 능동적인 태도와 한국적 독특성이 시대적으로 연관을 가지며 재조명되었다.

작가는 이 속에서 전통과 현대를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이 시대의 새로운 전통을 창조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에 하나의 방안을 제시했다는 업적을 남겼다. 전통적 방식을 현대화하는 일은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첫째는 전통을 기반으로 하며 현대적 정신을 받아들이면서 나아가는 길이고, 두 번째는 반대로 현대적 정신에 입각하여 전통 내의 가치 있는 부분을 살려내는 길이다. 이중에서 작가는 전자의 방향에서 성과를 이룩했다고 보여진다.

한국의 산천을 양식화하는데 있어 소정이 처했던 시대적, 정치적 여건은 각박했으며, 전반적인 예술적 여건 또한 마찬가지였다.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소정에 대해 ‘이와 같은 시대적 상황에서 자신의 방법으로 한국의 산천을 회화화를 통해 이룩하려 한 점, 해방 후에 외국 사조의 유입에도 한국화라는 양식을 추구한 점을 들어 시대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28고 평가하였다. 또한 소정 변관식의 작품과 그 생애는 개인의 전기에 국한되기보다는 전환기의 한국동양화단의 전개과정의 일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5. 맺음말

 

본 논문에서는 소정 변관식 산수화의 형성배경을 파악하고 작품의 주요 기법과 조형적 특징을 네 가지로 도출하였다. 변관식은 초기였던 1920년대부터 동연사를 조직하여 외조부인 소림 조석진과 심전 안중식에게 사사받은 전통화법에 새로운 사조를 더하고자 했다. 이는 기존의 화법에 변화를 줌으로써 새로운 화법을 모색하려는 시도였지만 동연사의 짧은 활동으로 시도에 그치게 되었다. 이후 일본 유학 시기를 거치며 다양한 기법을 체험하고 온 변관식은 귀국한 뒤 약 10년간은 일본과 중국의 화법에 관심을 가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나 이후 금강산 사생과 국전의 비리에 대한 고발문을 작성한다. 이 시기부터 특히 한국의 농가나 금강산을 주 소재로 거듭하여 선정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배경으로 인해 화법의 변화를 거친 뒤 1950년대부터 말년까지 변관식은 작가만의 조형적 특성을 통해 ‘소정양식’이라 불리는 특징을 구축한다. 특히 산수화에서 명확히 확인할 수 있으며, 적묵법과 파선법을 중심으로 한국 산천을 재현한 형태의 변형과 재구축, 동적 구도와 다시점, 노란 두루마기의 점경인물 배치 등이 이 특징에 해당한다.

과거 한국의 산천을 본인만의 조형적 요소를 통해 양식화하는 데 있어 소정 변관식이 처했던 시대적인 환경은 역사적인 전환점이 많은 시기였으며, 예술적으로도 여건이 좋지 못했다. 이 같은 시대에서 변관식에 대한 평가의 가장 중요한 점은 전통기법을 바탕으로 하며, 한국의 자연을 작가만의 특성이 두드러지는 기법을 통해 묘사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후대에 관념적인 전통화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 해방 후의 혼란과 새롭게 밀려들어온 외국 사조에 있어 한국화라는 양식을 추구해 갈 수 있었다는 것은 조선말기와 현대를 잇는 역할 또한 수행했음을 알 수 있다.

시대에 따라 의식과 양식은 변천하기 마련이나, 앞 시대의 전형을 그저 모방하거나, 전통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현대적 창작은 좋은 평가로 이어지기 어렵다. 한국 근대 미술사에서 시대적 배경을 거쳐 소정 변관식이 자주 거론되는 이유 역시 그러한 측면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변관식은 전통 산수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여 작품 활동을 하는 삶을 살았던 인물로서 의미가 크다. 이 같은 변관식에 대한 연구는 다양한 사조와 장르가 혼재하는 현대미술에서 한국화의 정체성을 제시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될 것이며, 반드시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참고문헌
 

 국립현대미술관 편저《소정, 길에서 무릉도원을 보다》국립현대미술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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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광수 저《한국의 회화-소정 변관식》 예경산업사. 1989

 이경성, 박영방, 이구열 편저《한국근대회화사전-한국화6. 변관식》금성출판사. 1990

 이영열〈소정 변관식의 금강산 그림 연구〉《미술사와 문화유산》창간호. 명지대학교 문 화유산연구소. 2012

 조은정〈《서화협회전》운영에 대한 연구〉《한국근현대미술사학》제29집.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15

 최병식 저《동양미술사전》갑을출판사. 1989

 최병식 저《한국현대미술의 정체성 연구》예서원. 1994

 최병식 저《현대동양회화사》예서원. 1994

 홍용선 저《소정 변관식》열음사. 1978

 
 
[Abstract] A Study on the Major Techniques and Formative Characteristics of Sojeong Byun Gwan-sik(1899-1976)’s Landscape Painting
 

Sojeong(小亭)Byun Gwan-sik(卞寬植, 1899-1976), is one of six great masters of traditional painting circles in modern times, and is a landscape painter for fields and mountains in Korea.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changes through the background of his landscape painting and to derive the main techniques and formative characteristics of the artist.

Byun Gwan-sik developed his own painting style between Korean classical painting learned from the teaching of Cho Sok-chin and Ahn Jung-sik and new painting trend experienced in Japan. As the 1950s approached, he freed himself from the main stream of the art circles and worked as an outsider. He showed the consciousness of the contemporary the urged awakening of the circles and deplored the corruption and injustice. He also emphasized the originality of his art based on the korean characters. From this period, he began to work with Mt. Geumgang as a material with his main techniques and formative characteristics.

Byun Gwan-sik’s major techniques and characteristics were classified into four categories. First category is “Jeokmuk method” and “Paseon method”. “Jeokmuk method” covers in layers with thicker ink and “Paseon method” destroys the lines and cuts the ink spots. The accumulation and margin of ink due to the effects of these create a strong contrast. These are the most basic elements of a certain form that makes up the dramatic composition of the screen. Especially, it effectively reveals the three-dimensional feeling and material feeling such as trees, rocks, and soil which are frequently shown in landscape paintings.

second category is dynamic structure and shape deformation. The structure, size, and form are reconstructed by the interpretation of the painter, highlighting tension and dynamic aspects and revealing his intention. Third is tiny human figures. Byun Gwan-sik’s landscapes often show tiny human figures against mountains of enormous scale. Most of them are men with a Korean hat on their head in a yellowish Korean topcoat. hey serve as guides to the audience in Mt. Geumgang and also highlight dynamic elements by inducing their gaze. Lastly, the multi-view is one of the main features that induces the reconstruction of space in the work of the Byun Gwan-sik and gives tension in the screen.

Byun Gwan-sik is meaningful as a person who lived a life of working on works by seeking new possibilities of traditional landscape paintings.The study on Byun Gwan-sik will be a guide to present the identity of Korean painting in contemporary art mixed with various trends and gen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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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1.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 미술평론경영 전공 석사 수료
  2. 소림(小琳) 조석진(趙錫晋, 1853-1920)은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 1861-1919)과 더불어 당대에 손꼽히는 화가였을 뿐 아니라 조선시대 최후의 화원이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인물이다. 작품 세계는 전반적으로 외조부 조정규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남종화법을 따랐으며, 전통적인 소재와 형식에 충실하였다.
  3. 서화미술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성격을 띤 미술학원으로 1911년에 설립되었던 윤영기(尹永基)의 경성서화미술원(京城書畵美術院)을 모체로 하여, 경성서화미술원이 설립된 다음해에 조선총독부, 이왕가(李王家)와 이완용(李完用) 등에 의해 조직된 서화 강습소다.
  4. 1918년 창립한 서화협회(書畵協會)가 회원전과 공모전 형식으로 개최했던 전람회 중 회원전을 말한다. 서화협회전(書畫協會展)은 1921년 이래 1936년까지 총 15회의 전람회를 개최하였다. 전람회 운영을 위해 입장료를 징수하였고 회원 영입을 위한 시상제도도 운영하였다. 또한 전시회장에서 작품의 매매가 이루어진 근대기 복합적인 문화공간을 보여주었다. 조은정〈《서화협회전》운영에 대한 연구〉《한국근현대미술사학》제29집. p.136.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15
  5. 고무로 스이운은 일본의 수묵화가로, 소정의 유학시기 당시 50대 초반의 나이로 일본 화단에서 중진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사생풍의 화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며 관전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고, 조선미술전람회의 동양화부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6. 홍용선 저《소정 변관식》p.88. 열음사. 1978
  7. 오광수 〈묵의 정신성과 한국화의 가능성〉《한국의 회화-소정 변관식》p.13. 예경산업사. 1989
  8. 변관식《편파적인 심위구성-그 비공정에서 파생될 화단의 암》동아일보 1955.10.28. 참고
  9. 제 3회 국전에 대한 평을 적은 것으로서 출품된 작품에 대한 평보다 심사위원 구성에 두고 개선을 촉구하였다. 동양화부가 많은 중견작가들이 출품거부를 한 까닭에 다른 부보다 적막함을 지적했는데 그 원인을 심사위원 구성에 두었다. 해결책으로 첫째, 심사위원을 각 직장·유파·무소속 등에서 선정하되 매년 교체할 것, 둘째, 4-5회 후에 중견작가도 심사위원에 포함하고 추천대우하기를 언급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개선책의 필요에 대한 당위성을 ‘민족예술의 발전’을 위한 데에 두었다. 정형민〈전환기적 근대화가 소정 변관식〉《한국의 미술가 변관식》p.17. 삼성문화재단. 1998
  10. 변관식《공정잃은 심사》연합신문 1957.10.21. 참고
  11. 홍선표〈한국적 산수풍류의 조형과 미학〉《소정, 길에서 무릉도원을 보다》p.150. 국립현대미술관. 2006
  12. 최병식 저《동양미술사전》p.285. 갑을출판사. 1989
  13. 변관식《나의 신작-춘경》조선일보 1974.1.19. 참고
  14. 오광수 저《소정 변관식》p. 82. 열화당. 1976
  15. 이구열 〈청전과 소정, 그 상반된 특질의 위대함〉《한국근대회화사전-한국화6. 변관식》p.103. 금성출판사. 1990
  16. 나뭇잎을 그릴 때 사용하는 기법으로, 작고 둥근 묵점(墨點)을 밀도 있게 찍는 수법이다. 산봉우리 근처 원경의 나무 표현에 자주 쓰인다.
  17. 홍선표〈한국적 이상향과 풍류의 미학〉《한국의 미술가 변관식》p.41. 삼성문화재단. 1998
  18. 오광수〈묵의 정신성과 한국화의 가능성〉《한국의 회화-소정 변관식》p.18. 예경산업사. 1989
  19. 오광수 저《소정 변관식》p.80. 열화당. 1976
  20. 조인수〈변관식 산수화의 점경인물: 근대적 풍경 속의 방랑자〉《소정, 길에서 무릉도원을 보다》p.193. 국립현대미술관. 2006
  21. 최병식 저《동양미술사전》p.69. 갑을출판사. 1989
  22. 오광수 저《소정 변관식》p.74. 열화당. 1976
  23. 오광수 저《소정 변관식》 p.69. 열화당. 1976
  24. 변관식〈미술의 한국적 독특성〉《자유공론》 pp.109-115. 《한국의 미술가 변관식》 p.249에서 재인용. 삼성문화재단. 1998
  25. 최병식 저《한국현대미술의 정체성 연구》 p.24. 예서원. 1994
  26. 이응노〈새 역사 창조의 기백-동요 없는 건실한 기법〉동아일보 1954. 10. 31. 《한국의 미술가 변관식》 p.262에서 재인용. 삼성문화재단. 1998
  27. 최병식 저《현대동양회화사》 p.198. 예서원. 1994
  28. 오광수 저《소정 변관식》 p.77. 열화당. 1976